[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17)소악후월

  • 입력 2002년 8월 1일 18시 03분


소악후월(小岳候月)은 소악루에서 달뜨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다.

겸재가 이런 제목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동복현감을 지내다 스스로 물러나 소악루 주인이 된 이유(李a·1675∼1757)는 겸재보다 한 살 위인 동년배인데 율곡학파의 조선성리학통을 계승한 성리학자이자 아름다운 생활환경을 즐길 줄 아는 풍류문사였다.

당연히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술과 시문 서화를 사랑하니 사람들은 그를 ‘강산주인(江山主人)’이라 불렀다. 따라서 그와 사귀던 인사들은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이거나 최고의 풍류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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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 한원진(南塘 韓元震·1682∼1751)과 병계 윤봉구(屛溪 尹鳳九·1681∼1767)는 ‘강문8학사(江門八學士)’로 불리던 당대 율곡학파의 최고 거장들이다. 이유는 이들과 친해 사람의 성품과 동물의 성품이 같은가 다른가를 따지는 일을 함께 의논할 정도였다.

그리고 진경시(眞景詩)의 최고봉인 사천 이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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