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의 기점을 이루며 불과 한두 달 사이에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번져간 3·1운동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전국의 항일 유적지에 건립된 이 기념비들은 국민적 성원의 집약체였다.
국사편찬위원회가 6년여에 걸친 검토 끝에 17개 건립 예정지를 선정했으며 이 중 15개 지역에 기념비와 탑이 세워졌다. 하지만 각 지자체 등 관리 주체들의 무관심과 관리 부실로 흉물로 변하다시피 방치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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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태〓71년 전북 익산시 익산역 광장에 세워진 3·1운동 기념비는 하단 콘크리트 기초 부분이 깨지고 곳곳이 기름때와 먼지로 얼룩진 상태. 더욱이 땅 소유주인 철도청이 이 부지를 주차장으로 임대하는 바람에 유적지가 아니라 마치 ‘시장통’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익산시 관계자는 “그동안 이곳에서 기념식 등 특별한 행사가 열리지 않았고 관리나 소유권이 명확치 않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민 김정선씨(47)는 “익산(구 이리)은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 경찰의 총에 맞아 수십 명의 민중이 숨진 역사적인 곳”이라며 “민족의 정기를 승화시킨 기념비가 이런 푸대접을 받고 있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72년 건립된 충북 영동군 영동읍 중심가에 위치한 ‘영동 3·1운동 기념비’는 비문의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뿌옇게 흰색 칠이 된 상태. 비 앞에 설치된 조형물은 곳곳에 녹이 슨 데다 촌스러운 파란색으로 덧칠이 돼 아이들 ‘장난감’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사비를 들여 기념비를 청소하고 주변 잔디를 깎고 있는 신달식(申達植·45)씨는 “선친 때부터 20년 가까이 탑을 돌봐 왔지만 관리주체인 지자체에서 예산 지원을 받은 적은 없다”며 “지자체와 주민들의 무관심으로 갈수록 훼손돼 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76년 설립된 전남 강진군 서성리의 ‘강진 기념비’도 대리석이 검은색으로 탈색되고 철제 울타리의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다. 강진군 관계자는 “부지가 김해 김씨 문중 땅인데다 관리주체도 명확치 않다”며 “관리권이 군으로 넘어오면 예산을 세워 보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84년 4월 전남 영암군 영암읍 영암공원에 세워진 ‘영암 3·1운동 기념비’도 대리석과 오석 곳곳에 회칠을 한 자국이 남아 있어 보기가 흉한 상태. 경북의 ‘안동 기념탑’도 명문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색이 바래고 묵은 때로 얼룩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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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과정〓기념비와 탑 가운데 13개를 제작한 김영중(金泳仲·77·사진) 연희조형 관장은 “대부분을 ‘ㄷ자형’ 석조물 안에 명문을 새겨 넣는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고인돌을 상징하는 기단 위에 만세를 부르는 민중의 입을 ㄷ자형으로 표현했죠. 비 앞의 조형물은 무수히 일어나는 민중을 나타냈고요.”
김 관장이 기념비 제작과 인연을 맺은 것은 66년 서울 중앙고에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동상을 만들면서부터. 동상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인촌 연구는 물론 주변 인물들까지 취재하는 열의를 높게 산 지인들의 추천이 계기가 됐다.
“당시는 동아일보가 온갖 핍박을 받을 때였습니다. 제작비 마련조차 쉽지 않았죠. 하지만 당시 일민 김상만(一民 金相万) 회장이 ‘아무리 어려워도 기념비는 만들어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보인 것에 감명을 받아 맡게 됐습니다.”
김 관장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잊혀지기 마련이지만 3·1운동 정신만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며 “지금의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당시 목숨을 던져가며 조국의 독립을 외친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대책〓현재 전국에 산재돼 있는 각종 항일운동 관련 기념비와 탑은 모두 1500여개. 국가보훈처는 1월부터 시행된 ‘현충시설의 지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현재 관리 실태를 파악 중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실태 파악이 되는 대로 구체적인 보존 방법과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지자체들도 관리에 성의를 보여 현충시설을 관광자원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보존 잘된 횡성 3·1운동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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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군 횡성읍 횡성군청 뒤 나지막한 동산인 3·1공원 중턱에 위치한 ‘횡성 3·1운동 기념비’(사진)는 72년 8월15일 현지 주민들의 자발적인 협조에 의해 건립됐다.
12평의 부지 위에 세워진 이 기념비 옥석의 비문에는 1919년 3월12일과 4월1, 2일 3차에 걸쳐 횡성 군민들이 일제에 항거해 횡성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던 내용들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기념비가 건립된 지 어언 3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기념비는 물론 일대가 말끔하게 정리돼 있는 등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기념비 하단의 암석기단과 기념비 바로 옆에 세워진, 일제에 항거하는 모습의 주물 형상만 다소 변색됐을 뿐 기념비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기념비 바로 앞 자그마한 광장과 기념비 주변도 철재 울타리로 잘 정리돼 있다.
이 기념비가 이처럼 잘 관리되고 있는 데는 횡성군청 직원들의 남다른 관심이 한 몫을 했다.
횡성군은 기념비의 소재지, 건립연대, 재원, 정비사업 일정, 건립배경 등을 자세히 수록한 ‘호국충효선현유적지 대장’을 작성해 이에 근거해 관리해 오고 있다. 또 매년 4월1일 이 공원에서 기념식도 갖고 있다.
군 문화공보담당 이종만(李鍾晩·49)씨는 “기념비를 잘 관리하는 게 곧 우리 선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길이 아니겠느냐”며 “곧 3·1공원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횡성〓최창순기자cs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