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한림면 수해현장]가옥10여채 흔적없이 사라져

  • 입력 2002년 8월 18일 19시 00분


18일 경남 김해시 장방리 침수지역의 물이 일부 빠지자 주민들이 정부가 지원한 양곡을 실어나르고 있다. - 김해=최재호기자
18일 경남 김해시 장방리 침수지역의 물이 일부 빠지자 주민들이 정부가 지원한 양곡을 실어나르고 있다. - 김해=최재호기자
“생지옥이 어디 따로 있습니까.”

18일로 침수 10일째를 맞고 있는 경남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 본장방마을.

죽은 돼지가 썩으면서 내뿜는 악취가 마을 전체에 퍼져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이날 하루동안 수위가 1m가량 내려가긴 했으나 아직도 집 안방까지 가득 들어찬 물 위에는 익사한 돼지 수십 마리가 떠다녀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뒷산에서는 군장병들이 중장비를 동원해 돼지 수천마리를 땅에 묻고 있었지만 일부 돼지는 채 숨이 끊어지기 전에 생매장되면서 비명을 토해내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주민들의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물이 들이닥치기 전에 축사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돼지 수백마리가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농작물을 파헤치고 있었지만 탈진한 주민들은 이를 막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날 땡볕 아래서 복구작업을 벌이던 주민 10여명은 결국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돼지 400여마리를 잃은 김상모(金相模·57)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며 “그저 죽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울먹였다.

선대부터 500년 동안 이 마을에서 살았다는 선종민(宣鍾敏·40)씨는 “상당수의 묘지를 돼지들이 파헤친 데다 생활터전이 망가져 올 추석에는 조상 뵙기가 어렵다며 마을을 떠나려는 주민이 많다”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물이 빠지면서 드러나기 시작한 마을의 모습도 수마(水魔)가 할퀸 참혹함을 실감케 했다.

본장방마을과 인근 마을의 가옥 10여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수십채가 곧 붕괴될 위기에 놓였다.

온실과 비닐하우스 100여채도 파손된 채 농작물과 쓰레기 등이 뒤엉켜 폐허로 변했다.

농민 박모씨(37)는 “물은 빠졌지만 집이 무너져 돌아갈 곳도 없다”며 넋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이 일대는 물이 빠지는 속도가 더뎌 앞으로도 4일 이상 고립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역시 극심한 침수 피해를 본 함안군 법수면 백산마을과 대평마을도 폐사한 수천마리의 돼지가 물 위에 방치돼 전염병 발생이 우려되고 있다.

경남도는 이날 2만2000여명의 인력과 1400여대의 각종 장비를 투입해 물 빼기와 복구작업을 벌였다. 이날 현재 집계된 재산 피해액은 3000억원대에 이른다.

김해〓석동빈기자 mobidic@donga.com

김해〓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함안-김해 주민들 국가상대訴 추진▼

경남 지역에 10일 이상 계속된 호우가 그치면서 18일부터 본격적인 복구작업이 시작됐으나 폐허로 변한 가옥 공장 농경지의 복구는 물론 전염병 예방과 침수원인 규명 등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생활기반 붕괴〓경남의 대표적 곡창지역인 함안군 법수면과 김해시 한림면 등지의 농경지 6500여㏊가 최소 3일에서 최대 10일 이상 물에 잠겨 올 농사는 이미 망친 상태다.

물이 빠져도 폐기물이 쌓여있고 농업기반시설이 망가져 내년 농사도 걱정되는 형편이다.

또 경남도 내 대부분의 논에 벼알마름병과 잎집무늬마름병, 도열병 등이 예년보다 일찍 발생했을 뿐 아니라 빠른 속도로 번져 수확의 대폭 감소가 예상되고 있다.

김해시 한림면 토정공단의 40여개 공장 등 침수피해를 본 경남 지역 200여개 기업체도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토정공단 관계자는 “완제품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시설도 망가져 재기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소기업 시설복구자금과 경영안정자금 등을 최대한 풀고 무담보 융자 등을 계획하고 있으나 피해 규모가 워낙 커 얼마나 도움이 될지 미지수다.

▽질병 우려〓경남도 내 2000가구 5300여명이 10일가량 침수지역 주변에서 생활한 데다 수질이 크게 오염돼 전염병 발생이 우려되고 있다.

한림면과 법수면 등에서는 돼지와 닭 등 가축 11만여마리가 죽었으나 뒤처리가 늦어지고 있다.

김해지역 수십명의 주민들은 이미 피부병에 걸린 상태다.

경남도는 그동안 3000여명에 대해 장티푸스 예방접종을 했고 120개반 350명의 방역기동반과 71개반 240명의 의료지원반을 가동하고 있다.

▽원인 규명〓수해지역 주민들은 제방 붕괴 등이 부실시공과 늑장 대응에 따른 ‘인재(人災)’라고 주장하며 책임자 처벌과 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법수면의 ‘부실공사로 인한 백산제방 붕괴 피해주민 대책위원회’와 합천군 청덕면의 ‘광암지구 재해대책본부’, 한림면의 ‘수해복구 비상대책위원회’ 등과 토정공단 입주업체들은 피해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며 피해액 전액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도 검토 중이다.

정부는 경찰 수사와는 별도로 특별감사를 벌이기로 하고 16일부터 피해지역에 한국수자원학회 관계자를 투입, 정밀 원인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 비가 시간당 강우량이 최대 50㎜ 이상, 누적 강우량이 500㎜를 훨씬 웃도는 유례 없는 폭우여서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김해〓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수해쓰레기 정부가 처리▼

환경부는 침수지역 쓰레기와 댐의 부유쓰레기 등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수해쓰레기 처리비용을 국고에서 전액 지원하는 것 등 종합대책을 마련했다고 18일 밝혔다.

환경부는 이를 위해 수해쓰레기 처리비용의 국고 지원을 중앙재해대책본부에 요청하는 한편 수해쓰레기를 수도권매립지에 우선 반입키로 했다.

또 수해복구 기간 중 오폐수를 몰래 버리는 행위를 막기 위해 오폐수 배출업소와 특정 유해물질 배출업소 등을 대상으로 특별감시를 실시하기로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서울 경기 충북 전북 등 4개 시도에서만 이번 집중호우로 발생한 쓰레기양은 모두 7408t으로 이 중 29.3%인 2169t만 처리됐다”며 “현재까지도 물이 다 빠지지 않은 경남과 강원지역의 수해쓰레기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댐 중에는 충주댐의 쓰레기 발생량이 1600여t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으로 안동댐 소양강댐 순인데 환경부는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부유쓰레기를 처리할 예정이다.

정성희기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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