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과 환경보전
경기 군포시 산본신도시에 사는 주부 김모씨(31)는 요즘 빨리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말 신혼 살림을 18평 전세 아파트에서 시작한 ‘초보 주부’ 김씨는 친정에서는 보지 못했던 복잡한 쓰레기 배출 시스템 때문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우선 집안에서 배출되는 쓰레기 중 타는 쓰레기는 흰색 봉투에 넣어 월∼토요일에, 안타는 쓰레기는 녹색봉투에 넣어 목요일에 배출해야 한다.
신문지나 종이박스 등 종이류와 병, 캔 등 재활용품은 따로 지정된 분리수거통에 넣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 이 아파트단지는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지역이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는 분리수거 용기에 따로 내놓는다. 음식물 쓰레기는 돼지나 닭 등 가축의 사료나 퇴비로 쓰이기 때문에 마늘껍질, 밤껍질, 감자 싹난 것, 조개껍데기, 된장 간장 고추장 등 소금기가 많은 것은 담아서는 안 된다.
주부들로 구성된 자율점검반이 쓰레기가 제대로 배출됐는지 수시로 점검을 한다. 잘못 배출된 쓰레기가 있을 경우 ‘○○○호에서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에 이쑤시개가 담겨 있다. 다시 가져가라’는 단지내 방송이 나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김씨는 “쓰레기봉투값도 만만치 않아 봉투값을 줄이기 위해 아직 규제가 강하지 않은 친정집으로 쓰레기를 담아갈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군포시의 쓰레기 배출규제가 까다로운 것은 산본신도시를 조성할 당시 폐기물소각장 문제로 국내 최초로 ‘자녀 등교거부 투쟁’까지 벌인 적이 있는 군포 시민들이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의 중요성을 깨쳤기 때문이다.
직장에 다니는 최모씨(40·여·경기 과천시)는 개학을 앞두고 딸의 방학과제를 도와 주려다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주도적 학습과제’란 이름의 방학과제물은 ‘우리가 먹는 식품 속의 첨가물’ ‘집에서 쓰는 물의 양과 용도 조사’ ‘음식쓰레기의 비료화와 그 효과에 관한 연구’ ‘유기농법 조사와 우리 생활의 관련성’ ‘합성수지의 비밀’ 등 중에서 한두 가지를 연구해 오는 것이었다.
최씨는 “딸아이가 ‘녹색댐’이나 ‘리우회의’에 대해 물었을 때 당황했는데 방학과제물 주제도 대부분 환경 문제였다”고 밝혔다.
실제로 1995년 중고교에서 환경과목이 독립 교과로 신설된 뒤 대입수능시험에서 환경 문제의 출제 비중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환경오염이나 생태계 변화, 국제협약 등 환경관련 문제가 수능시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6년 3문제에서 2001년에는 13문제로 크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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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에서 시민들이 지불하는 환경 비용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팔당물을 식수원으로 하는 서울 인천 전역과 경기도내 팔당 하류지역 주민들은 1999년부터 상수원 보호를 위한 기금으로 t당 110원의 물 이용 부담금을 수도요금에 포함해 지불하고 있다.
생활의 필수품이 되다시피한 먹는 샘물(생수)에도 환경비용이 들어가 있다. 생수 판매 가격에서 세금을 제외한 가격의 7.5%는 지하수 자원 보호를 위한 수질개선부담금으로 사용된다.
지난해 전력요금 누진제가 실시된 후 한때 10만원이 넘는 전기요금이 나와 깜짝 놀랐던 주부 정지선씨(33·서울 강북구 수유동)는 “가전제품을 살 때 절전형인지를 가장 먼저 살피게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
일상생활에서 ‘환경의 힘’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우선 내년부터 수도권에 차적을 둔 차량 소유자들은 대기오염 물질 배출에 따른 대기환경개선부담금을 물어야 한다.
올 7월부터는 대기오염 물질을 과도하게 배출한다는 이유로 일부 경유 자동차의 생산이 중단됐다. 이로 인해 관련 차종의 중고차 값이 폭락한 것은 물론 차량 소유자들은 부품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으로는 국가의 발전 전략도 경제성장 중심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전환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이는 ‘환경 용량’의 한계에 다다른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각종 협약이나 무역 압력을 통해 강요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환경부는 개발지상주의의 잘못된 정책과 환경부가 개발 부처의 뒤처리를 해주는 시대는 끝났다며 앞으로는 환경정책이 △사후처리 방식에서 사전 예방 방식으로 전환되고 △경제정책과 환경정책이 통합되며 △지방자치단체 지역주민 및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참여방식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 안현주(安炫注) 사업부장은 “이제 우리 생활에 있어 환경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깨끗한 환경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부장은 “그러나 무조건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곤란하다”며 자발적으로 환경 문제 해결에 참여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포지티브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환경부담금 종류 및 부과대상 | |
종류 | 부과대상 |
환경개선부담금 | 바닥면적 160㎡ 이상 시설물, 경유자동차 |
배출부과금 | 허용기준을 초과한 오염물질을 배출한 업소 |
폐기물예치금 | 종이팩 유리병 페트병 금속캔 수은전지 타이어 윤활유 TV 세탁기 에어컨 냉장고 형광등 |
폐기물부담금 | 살충제 및 유독물 용기, 유리 및 플라스틱 화장품용기, 3가지 이상 재료가 쓰인 과자제품, 부동액, 껌, 1회용기저귀, 합성수지, 담배 |
수질개선부담금 | 먹는 샘물(생수) 수입 및 생산업자 |
물이용부담금 | 서울과 인천 전역, 경기지역의 팔당 하류지역 주민 |
▼환경비용 형평성 논란▼
일상 생활에서 발생하는 환경비용의 부담 원칙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두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정부가 고민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원칙이 ‘오염자 부담 원칙’이다. 이는 환경오염을 초래한 원인자가 해결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환경세와 배출부과금 쓰레기종량제 배출권거래제도 등이 모두 이 원칙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오염자 부담 원칙의 적용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각 가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처리 비용은 현재 최종 소비자가 지불하고 있지만 이들 쓰레기를 만들어낸 것은 생산자들이다. 따라서 제품의 최초 생산자도 쓰레기 처리 비용의 일부를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대도시의 골칫거리 중 하나인 폐차 문제도 마찬가지다. 폐차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차량 소유자들이 번호판을 떼낸 채 차를 아무데나 버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들 폐차의 처리 비용을 자동차 회사들이 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원칙은 ‘수혜자 부담 원칙’이다. 우리나라에서 수혜자 부담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 물이용부담금이다. 오염자 부담 원칙대로라면 한강물을 오염시킨 상류지역 주민들에게 오염 정화 비용을 물려야 하지만 실제로는 이 물을 이용함으로써 혜택을 보는 하류지역 주민들이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희생자 부담 원칙’도 있다. 주로 국가간 환경 분쟁에 적용되는 것으로 원인 제공자가 빈곤국이고 오염 피해자가 선진국일 경우 선진국에서 빈곤국에 돈을 주어 오염물질을 처리토록 하는 것이다.
▼환경1등국 핀란드의 비결▼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는 어디일까.
세계경제포럼(WEF)이 미국 예일대 환경법·환경정책센터와 컬럼비아대 국제지구과학 정보네트워크에 맡겨 수질과 대기질 개선 노력 등 5개 분야 20개 지표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환경성과지수(ESI)에서 73.7점을 얻은 핀란드가 1위를 차지했다. 노르웨이 스웨덴 캐나다가 그 뒤를 이었으며 한국은 100점 만점에 35.1점을 받아 세계 136위를 기록했다.
ESI는 한 국가가 환경파괴를 유발하지 않고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능력을 지표화한 것. 환경오염 정도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보건상태 토론능력 등 환경 인프라가 종합적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국민소득이 높다고 해서 환경의 질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실례로 핀란드의 1인당 국민소득 2만2008달러는 벨기에의 2만4533달러보다도 낮지만 벨기에는 127위를 기록했다.
핀란드가 세계 1위를 한 까닭은 대기 및 수질오염 개선 노력의 성공과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 때문이라고 WEF는 평가했다.
핀란드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나라가 결코 아니다. 18만개의 크고 작은 호수를 가진 핀란드는 수질 관리가 어렵기로 유명하다. 겨울에는 얼음으로 뒤덮여 용존산소가 부족하고 제지공장은 폐수를 내뿜었으며 러시아로부터 날아온 대기 오염물질로 국토와 호소의 산성화가 심각했다. 하지만 핀란드는 전국 1만여개의 지점에서 매년 60만건의 수질을 측정해 수질을 관리하고 하수처리시설을 만들어 수질 개선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핀란드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세계 최초로 화석연료에 탄소세를 부과했으며 추운 나라로서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열병합발전 지역난방 및 에너지 효율화 작업을 통해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했다. 1950년대 도입된 지역난방 시스템은 현재 핀란드의 주요 수출 품목.
핀란드의 특징적 제도 가운데 하나는 92년 실시된 ‘환경면허제’이다. 토지이용이나 건축 등 오염이 예상되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는 정부의 면허를 받도록 돼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 및 질소 인 배출량이 높을 경우 부하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며 환경친화적 농법을 유도하기 위해 비료 사용시에도 세금을 내야 한다.
이런 규제와 환경 비용 부담이 가능한 것은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핀란드 국민이 기꺼이 동참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정성희기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