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곳을 아시나요]미제 물품 팔던 추억의 ‘양키시장’

  • 입력 2002년 8월 23일 17시 24분


인천 동구 송현동 100의 송현자유시장.

6·25전쟁이 끝난 이후인 1950년대 중반부터 미국산 물품을 주로 팔아 속칭 ‘양키시장’으로 불렸던 이 시장은 인천지역 중노년층에게는 추억과 향수가 서려 있는 곳이다.

입을 옷이 넉넉하지 않았던 1970년대 초반까지 청년들 사이엔 양키시장에서 값싼 미군 군복을 구입해 검정색으로 물들여 입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 시장에는 현재 135개의 가게가 등록돼 있지만 1995년 인근에 대형 유통업체들이 들어선 이후 손님들이 줄어 80여개의 가게만 장사를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 가게는 서울의 남대문시장에서 구입해온 미국산 화장품과 커피 껌 샴푸 캔디 양주 등을 팔면서 양키시장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 곳은 일제 말기인 1940년대 초 상인들이 하나 둘 모여 물건을 팔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됐다. 그러다 6·25전쟁 당시 폭격에 의해 시장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피난민들이 판자집을 지어 생활했는데 이들 피난민은 생계를 잇기 위해 순대와 곱창 등을 팔기 시작했다. 현재도 양키시장으로 들어서는 골목에는 10여곳의 순대집이 있다.

6·25전쟁이 끝난 뒤 한동안 이 곳에 가면 부평의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복과 통조림 담배 등 미제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경찰 등 단속요원이 나타나면 미제 물건이 순식간에 사라져 ‘도깨비시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1970년대까지는 ‘없는 것이 없는 시장’으로 통했으나 1980년대 후반 수입자유화 조치 이후 미국산 물품이 흔해지자 양키시장의 위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 가게들이 주로 취급하는 물품을 국산의류로 바꾸었다.

요즘 양키시장의 수입품 가게는 하루평균 3만∼7만원 정도를, 옷가게는 10만∼20만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시장 안에는 10곳의 의류 수선가게도 있다.

이 시장에서 30여년간 장사를 해온 의류가게 호남사의 대표인 김만근씨(57)는 “서울올림픽 당시에는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외국인들이 청바지 등 의류를 싹쓸이해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밝혔다.

요즘은 의류가게에서 미군의 항공점퍼와 물 빠진 청바지, 그리고 신세대의 취향에 맞춰 가죽옷이나 벨트 가방 신발 등도 팔고 있다.

대학생 안성준씨(24·인천 남구 주안 4동)는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 곳에 와 옷과 신발 등을 구입해왔다”며 “젊은층이 선호하는 의류와 신발 벨트 등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는데다 값도 싸 요즘도 친구들과 한달에 서너번씩 찾는다”고 말했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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