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법 형사9단독 박태동(朴泰東) 부장판사는 3일 ‘이승복 사건’이 조선일보에 의해 조작됐다고 주장하다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김주언(金周彦·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과 김종배(金鍾培) 전 미디어오늘 편집장에게 각각 징역 6월과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박 판사는 “사건의 경위와 피고인들의 입장 등 특수 사정을 고려한다”며 이들을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박 판사는 “이승복군 진술의 진위 여부는 관계자들이 모두 이를 전해들었다고 진술하고 있어 더 이상 따질 수 없는 문제가 됐고 조선일보 기자가 현장 취재를 했는지는 당시 현장사진의 존재와 관계자 진술 등을 통해 확인되므로 사건이 조작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김 전 총장은 98년 8∼9월 서울과 부산에서 오보(誤報) 전시회를 열면서 68년 ‘이승복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를 ‘기사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설명 등과 함께 전시한 혐의로, 김 전 편집장은 미디어오늘 등에 같은 취지의 주장을 담은 기사를 게재한 혐의로 각각 불구속기소됐다. 검찰은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1년6월을 구형했다.
▼'공산당이 싫어요'외침 사실로▼
68년 무장공비에게 살해당한 이승복군은 과연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을까.
조선일보의 보도를 통해 이런 사실이 알려진 뒤 관련 내용은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실리는 등 수십년간 반공교육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92년 당시 기자협회 기자였던 김종배(金鍾培)씨가 계간지 ‘저널리즘’ 가을호에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신화 이렇게 조작됐다’는 글을 기고한 뒤 오보, 조작 가능성이 공론화됐다.
그 후 여러 매체와 단체에서도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는 98년 정부수립 50주년 기념 오보전시회에서 이 기사를 대표적인 오보 사례로 내세웠다.
논란이 확산되자 조선일보는 김씨와 언개련 사무총장이었던 김주언(金周彦)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또 두 사람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각 1억원)소송까지 냈다.
쟁점은 이승복군이 과연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는지와 조선일보 기자가 현장 취재를 통해 확인, 기사화했는지의 여부.
3년간의 심리 끝에 법원은 이군이 숨지기 전에 이런 발언을 한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이군의 외침을 유일하게 직접 들었다는 형 이학관씨(당시 15세)의 증언을 뒤집을 근거가 없는 데다 주변 관계자들도 “사건 직후 이학관씨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기 때문.
당시 취재를 맡았던 조선일보 강인원 기자가 현장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증인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그러나 법원은 조선일보가 제출한 현장사진 10장을 주요 근거로 ‘현장 취재가 이뤄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김씨 등은 “당시 취재를 도왔던 조선일보 강릉주재 기자가 ‘작문’이라고 털어놓은 내용이나 현장에서 강 기자를 본 적이 없다는 관계자들의 증언이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항소할 뜻을 밝혀 논란은 2심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