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김천 복구 현장]“가구 하나라도 더…” 안간힘

  • 입력 2002년 9월 3일 18시 25분


3일 수돗물 공급이 끊긴 강원 강릉시 강동면 대동리 동네 앞 개천에서 한 이재민이 식기를 닦고 있다. - 강릉=변영욱기자
3일 수돗물 공급이 끊긴 강원 강릉시 강동면 대동리 동네 앞 개천에서 한 이재민이 식기를 닦고 있다. - 강릉=변영욱기자
태풍 루사로 큰 피해를 본 강원 강릉시와 경북 김천시에서는 3일 참혹한 수해의 현장 속에서도 복구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주민 등 관계자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강릉▼이날 오후 1시 오봉댐 하류 취수장 입구에서 취수관 연결 작업을 하던 강릉시 상수도사업소 직원들은 관로를 응급 복구한 뒤 환호성을 질렀다.

시민 20여만명의 상수원수를 공급하던 지름 800㎜의 취수관로 500m가 수해로 끊겨 나흘째 먹을 물은 물론 세숫물마저 구하지 못해 애를 태웠던 시민들에게 취수관로 연결은 복음과 같은 소식이었다.

강릉시 관계자는 “이제 오봉댐에서 정수장으로 물이 공급되기 때문에 정수과정을 거쳐 며칠 뒤면 시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수해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고 있다. 중장비는 연신 쓰레기를 덤프트럭에 주워담았고 군부대에서 투입된 방역반은 연막소독을 하며 수해의 흔적을 지우려고 애썼다.

강동면 대동리 주민들은 개천에 나와 식기를 닦고 빨래를 하며 내일을 기약했다.

수해로 전기가 끊어져 암흑 속에 살던 4만7000여가구 중 4만3000여가구에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1만1881회선이 두절됐던 일반전화는 8739회선이 복구돼 73.5%의 복구율을 보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들은 물 속에 잠긴 가전제품을 수리해주며 복구에 동참했다. 대한의사협회 소속 의사들은 경포중학교 체육관에서 무료진료활동을 벌였다.

▼김천▼곳곳에 수돗물과 전기가 끊겨 고통을 겪고 있지만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은 ‘다시 일어서자’며 복구에 비지땀을 흘렸다.

이날 주민 4000여명과 공무원, 군인, 경찰, 학생, 소방대원 등 1만여명이 물을 나르고 청소를 했다. 도로가 끊긴 대덕면 증산면 부항면 등지에는 헬기 4대가 쉴새 없이 오가며 생필품을 날랐다.

섬처럼 고립됐던 지례면 일대 5개 면에는 도로가 부분 개통되면서 물과 구호품을 실은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벼 세우기 작업도 시작돼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다.

인근 학교로 대피했던 이재민들도 집으로 내려와 가재도구에 묻은 진흙을 씻어내고 빨래를 하면서 악몽을 조금씩 잊고 있다.

구성면 상원리 이장 이상목(李相穆·58)씨는 “대대로 살아온 땅을 망쳐 올 추석에는 조상을 뵐 면목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불통이던 전화는 이날부터 부분 개통됐지만

대덕면 등 3개면은 전기와 도로가 완전히 끊겨 주민들은 계속 어둠 속에서 밤을 지내야 할 형편이다.

복구공사에 들어간 경부선 감천철교는 15일 임시 개통될 예정이다.

강릉〓경인수기자 sunghyun@donga.com

김천〓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사망-실종 214명▼

태풍 ‘루사’로 인한 재산피해 규모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중앙재해대책본부는 3일 오후 11시 현재 재산 피해규모가 1조6600억원을 넘어섰으며 이는 지금까지 최대 피해규모를 기록했던 99년 태풍 ‘올가’의 1조700여억원을 훨씬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재해대책본부는 또 “아직까지 피해 신고 접수가 계속되고 있어 총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인명 피해도 사망 113명, 실종 71명 등 184명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오후 11시까지 본보 취재팀의 집계 결과 사망 실종자가 모두 214명(사망 136명, 실종 78명)으로 늘어나고 7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또 주택 및 건물 2만9000여동, 농경지 11만5000여㏊가 피해를 보았으며 7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강릉 전투기 10여대 침수…대인지뢰 80여개도 유실▼

한편 제15호 태풍 ‘루사(RUSA)’의 영향으로 강릉의 공군 전투비행단 소속 F5 전투기 10여대가 침수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폭우로 인해 공군 전투기가 물에 잠기는 피해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군 관계자는 3일 “지난달 31일과 1일 사이의 집중호우로 강릉 모 전투비행단의 격납고에 있던 F5 전투기 10여대가 조종석 아래까지 침수되는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미리 태풍의 경로를 예상해 다수의 전투기를 안전지대로 옮기는 등 사고에 대비했지만 한꺼번에 900㎜가 넘는 폭우가 내린데다 부대 인근의 저수지가 범람해 침수를 막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공군 관계자는 “피해를 본 전투기들은 전국의 각 기지로 분산돼 부품 교체 등 정비 점검을 거쳐 2∼3개월 뒤에 정상운용이 가능할 것”이라며 “다른 비행단의 전투기를 긴급 투입하는 등 긴급조치를 취해 이번 사태로 인한 전력 공백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해당 전투기들이 엔진까지 물에 완전히 잠겨 정비를 하더라도 정상적인 작동이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공군 당국은 또 피해 사실을 쉬쉬해오다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나서야 이를 공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공군은 또 이번 호우로 강릉 대진동의 방공포대 담장 부근에 매설된 대인지뢰 80여개가 토사와 함께 주변 농수로로 쓸려 내려가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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