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종자를 뿌리는 대파(代播) 비용으로 1600여만원을 준다는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경남 김해시 한림면 이득만(李得滿·45)씨는 지난달 초 폭우로 12만포기의 양란(洋蘭)을 재배하던 2500여평의 비닐하우스가 침수돼 10억원대의 피해를 봤다. 그러나 자연재해대책법에는 대파를 위해 1600여만원의 ‘쥐꼬리 복구비’만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이씨는 “정부의 ‘생색내기용’ 지원을 받아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지원을 거부하기로 했다.
이처럼 정부의 재해지원은 이재민 구호의 성격이 짙고 실질적인 보상이나 복구 지원과는 거리가 먼 게 우리의 현실이다.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르면 피해 농경지 복구비의 경우 3㏊ 미만은 본인 부담이 40%,3㏊ 이상은 60%이며 농작물 복구는 본인이 30%를 부담해야 한다. 대규모 비닐하우스의 경우는 전액 융자와 자부담으로 복구해야 한다.
또 대파비나 가축입식비는 지원 규모가 1년 예상 소득의 10% 안팎에 불과하다. 작물은 묘목비, 가축은 새끼가축을 원칙으로 지원해 현실성이 없다는 게 농민들의 주장이다. 주택의 경우 전파 및 유실은 810만원, 반파는 405만원, 침수주택 수리비는 가구당 60만원이 각각 지원된다. 그나마 점포나 공장의 파손이나 침수에 대한 지원은 규정조차 없는 실정이다.
태풍 루사로 집이 침수된 강원 강릉지역 주민들은 “방 한 칸을 수리하고 도배하는 데도 최소 100만원 이상이 든다”며 정부의 수리지원금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사망 실종자의 경우 가구주는 1000만원, 가구원은 500만원이 의연금으로 지원되며 부상자에게는 사망 실종자의 절반이 지원된다.
지난달 초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본 김해 함안 합천지역의 주민들은 △전파 주택의 경우 평당 건축비 250만원 지원 △침수주택 수리비 가구당 1000만원 지급 △농경지 복구비 전액 지원 △비닐하우스 피해액 전액 보상△세금과 공과금 1년간 면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
경남도도 최근 정부에 농작물 복구시 피해 농작물 예상 수익의 70% 범위 안에서 국고로 직접 보상하고, 농경지와 농림시설 복구에 대한 지원을 늘리며 공장과 수산시설에 대한 지원도 크게 확대해 주도록 건의했다.
그러나 정부는 예산 확보의 어려움과 피해 주민간 형평성, 일반 국민의 감정 등을 이유로 일반 재해지역에 대한 보상과 지원을 현재의 규정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지난달 ‘재해극심지역’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해 특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자연재해대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이들 지역에 대해서만 특별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재 정부가 개정된 자연재해대책법 시행령에 얼마나 특별재해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하느냐는 점이다.
정부는 피해보상 및 지원과 관련해 △피해 주민의 자부담과 지방세 경감 △특별위로금 인상 △금융기관 융자금 상환 기간 연장 △세금 납부기간 연장 및 유예 △점포 및 공장 침수 피해 보상 △중소기업에 대한 국가의 특례보증 등의 방향으로 시행령을 만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특별재해지역이라 하더라도 일반 재해지역과의 형평성 및 예산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획기적인 보상이나 지원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국농민회 경남도연맹 강기갑(姜基甲) 의장은 “농업이 국가 기반산업이라는 인식을 갖고 ‘농업재해보상법’을 별도로 만들어 피해 농민들이 생계유지와 농업기반 복구를 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보상 및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정부의 재해피해 지원은 한계가 있는 만큼 미국 등 선진국처럼 재해보험을 개발해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해야 한다”며 “다만 재해보험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과 농어민 등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해관련 지원기준 및 김해 수해지역 주민 요구 비교 | |||
항목 | 자연재해대책법상 지원 기준 | 경남 김해 수해지역주민 요구 | 96년 강원 고성 산불당시 지원 |
특별위로금 | 사망 가구주 1000만원 | 500만원(세입자 포함) | 1000만원 |
생계 구호 | 3개월(1인 하루 2294원) 지원 | 1년간 지원 | 해당 없음 |
주택건축비 | 15평 기준 2700만원(국비 20%, 지방비 10%, 융자 60%, 자부담 10%) | 건축비 평당 250만원 지원(전파 주택) | 건축비 평당 180만원 지원 |
침수주택 수리비 | 가구당 60만원 | 가구당 1000만원 | 해당 없음 |
상가점포 등영업시설 | 없음 | 국비와 지방비에서 건축비 등 전액 지원(물건은 구입가 지원) | 국비 부담 |
농경지 복구 | 국비 50%, 지방비 10%, 융자 30%, 자부담 10% | 국비 90% 지방비 10% | 해당 없음 |
벼 농 사 | 종자대금 및 농약대 등 일부 지원 | 100% 국비에서 지급 | 해당 없음 |
비닐하우스 | 국비 35%, 융자 55%, 자부담 10% | 국비에서 전액 보상 | 해당 없음 |
양기대기자 kee@donga.com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국내 재해보험상품은▼
지난달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경남지역 수재민 가운데 정부가 아닌 곳에서 보험보상을 받을 수 있는 수재민은 다섯 농가, 보험금 지급액은 1억9800만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가축공제보험에 가입한 농가뿐이다.
한국의 농업은 기본적으로 기업형이 아닌 생계형이기 때문에 농민들은 연간 50만∼100만원이나 되는 보험료를 내는 것에 큰 부담을 갖고 있다.
현재 농작물 및 가축 관련 보험상품을 파는 곳은 농협중앙회밖에 없다.
일반 손해보험회사는 화재보험에 ‘풍수재해보험특약’을 더한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농민들이 가입한 경우는 거의 없다. 집에 대한 화재보험에 먼저 들고 추가로 농작물 특약에 가입해야 하는데 농민들은 화재보험 자체에 대한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는 지난해부터 사과와 배에 대한 농작물 보험상품을 처음 팔았고 올해는 포도 복숭아 단감 감귤 등 4가지 품목을 추가했다.
그러나 보험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는 위험은 태풍과 우박이며 호우와 서리는 추가로 특약에 가입해야 보상받을 수 있다. 경남지역 수재민들은 이 특약에 가입하지 않아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 상품도 과일의 꽃이 피는 4월 한 달만 팔고 보험료도 두 번에 걸쳐 모두 내야 한다.
가축공제상품은 97년부터 팔기 시작했으나 아직 가입 실적이 미미하다. 대상은 소 돼지 말 닭 등 네 가지며 법정전염병을 제외한 풍수해 화재 설해 등에 대해 보장한다. 농민들이 보험 가입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 보험회사들도 자연재해 관련 보험상품의 적극적인 개발을 꺼리고 있다. 태풍과 수해 같은 자연재해의 경우 한번 발생하면 피해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비싼 보험료를 받아야 하는데 농민들이 가입할 여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험개발원 이기형 화재해상보험팀장은 “당초 2003년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험료 중 일부를 지원하는 형태로 자연재해보험 판매를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예산 지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무산됐다”고 말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선진국에선▼
선진국에서는 홍수와 지진 등 자연재해가 났을 때 정부 차원의 지원은 개인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복구지원’ 형태로 이뤄진다. 일부 보상을 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개인이 재난보험을 들어 해결한다.
▽독일〓최근 대홍수를 당했지만 아직 수해보상 논의는 없다. 그러나 명목이야 어떻든 피해자들은 간접적으로나마 정부의 지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피해 추산액은 140억유로(약 16조원). 연방정부는 이미 100억유로(약 11조5000억원)를 수해 복구비로 책정했다. 정부는 우선 모든 피해 가구에 50유로(약 5만8000원)씩을 지급했다. 당장 빵 사먹을 돈이 필요한 주민들을 위한 배려다.
민간에서는 모금운동으로 1억3000만유로(약 1500억원)를 거뒀다. 기업들도 25%인 법인세율 이상의 추가 법인세를 내 돕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보상은 개인보험에서 나온다. 주독 한국대사관 김영희(金英姬) 공사참사관은 “독일인들은 보통 10여개씩의 각종 재해보험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
▽미국〓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이재민들에게 직접 수해보상금을 지급하지는 않는다. 연방재난구호기금(FDRF)은 주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수해 복구사업을 지원하는 데만 쓰인다. 따라서 개인은 홍수보험에 미리 들거나, 연방정부에서 싼 이자로 융자를 받아 해결한다.
개인은 집을 장만할 때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장기 대출을 받는다. 이때 은행에서는 집이 홍수보험에 들거나 수해의 우려가 없다는 것을 보증해야 대출을 해준다.
대표적인 홍수보험은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관리하고 정부가 100% 보증하는 전국홍수보험프로그램(NFIP). 단독주택에 대해선 25만달러(약 3억원), 비주거용 건축물에 대해선 50만달러(약 6억원)까지 보상한다.
적십자사와 민간 구호단체를 통해 수재민들에게 전달되는 성금은 미미한 편이다.
▽일본〓지진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 발생 비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피해자 보상, 복구 등 재해대책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그러나 개인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보다는 재해 예방이나 도로복구 등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단 재해가 발생하면 관계 각료가 모두 참석하는 재해본부를 설치해 지원책을 논의하고 보상범위를 결정한다. 지난해 정부의 재해 관련 예산도 3조425억엔(약 30조4250억원)이나 된다.
자연재해로 피해를 보면 피해자생활재건지원법에 따라 최고 100만엔(약 1000만원)의 생활재건지원금이 지급된다. 또 무이자로 융자를 해주기도 하고 지방세를 감면해주기도 한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