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씨는 “마을 앞 도로가 끊겨 포도를 출하하지 못했다”며 “1년 농사를 망쳤는데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정부가 무슨 정부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남해안의 적조와 집중호우, 태풍 등 연이은 자연재해로 민심이 폭발 직전이다.
이재민들은 정부의 늑장 대처에 항의하며 곳곳에서 마찰을 빚고 있으며 수해 현장을 찾은 정치인은 이재민들로부터 “정치나 똑바로 하라”는 핀잔을 듣는 등 봉변하기 일쑤다.
▽성난 민심〓경북 영양군 수비면 주민 30여명은 2일 수해 현장을 방문한 군청 간부들의 멱살을 잡고 군청으로 몰려가 “마을이 폐허가 됐는데 뭐하고 있느냐”며 거칠게 항의했다.
또 1일 오전 9시경 전북 남원시 운봉읍사무소에서 주민 김상옥씨(56)가 수해복구를 해주지 않는다며 준비한 오물을 읍사무소 바닥에 뿌리고 항의하는 소동을 벌였다.
전남 완도군 약산면에서는 가두리양식장을 운영하다 적조로 물고기 17만마리가 폐사하는 피해를 본 박모씨(49)가 지난달 30일 공무원들이 적조피해 조사를 소홀히 한다며 시비를 벌이다 완도군의회 박모 의장(55)에게 흉기를 휘둘러 상처를 입혔다.
성난 민심은 특히 적조와 집중호우, 태풍 피해가 겹친 영남지역에서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대구 중구에 사는 한 40대 남자는 “현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 중에서 성공한 게 뭐 있느냐”며 “굳이 민심의 현주소를 표현한다면 ‘무관심과 냉소’일 것”이라고 말했다.
▽생색내기용 위문〓의례적인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의 수해지역 위문이 오히려 민심 이반을 부추기고 있다.
전윤철(田允喆)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3일 수해 실태 파악을 위해 헬기를 타고 경북 김천시청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박팔용(朴八用) 김천시장이 고립지역에 생필품을 공급하기 위한 헬기 지원을 요구하자 전 장관을 수행한 일행 중 한 명이 “헬기는 군부대와 협의해야 한다. 바빠서 돌아가야겠다”고 말해 박 시장으로부터 “바쁜 분들이 뭐 하러 왔느냐”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충북 영동군에는 4일 한명숙(韓明淑) 여성부장관을 비롯해 노무현(盧武鉉) 민주당대통령 후보, 문동신(文東信) 농업기반공사 사장 등이 방문했다. 이에 앞서 2일에는 김성호(金成豪) 보건복지부장관, 한나라당 태풍피해진상조사단(단장 강창희·姜昌熙) 소속 국회의원 4명과 충청지역 지구당위원장 10명, 유주열(柳周烈) 충북도의회 의장과 도의원 등 21명이 다녀갔고 1일엔 김동태(金東泰) 농림부장관이 방문했다. 이 때문에 영동군은 수해복구보다는 이들을 영접하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조대엽(趙大燁) 교수는 “정부가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해 시민들의 박탈감과 허탈감이 분노로 바뀌고 있다”며 “시민들의 분노가 집단행동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가 이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즉각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김천〓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청주〓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