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부천 ‘알뜰시장’놓고 상가-부녀회 갈등

  • 입력 2002년 9월 10일 23시 43분


경기 부천시 중3동의 한 아파트단지 상가에서 7년째 과일가게를 하고 있는 양현흡씨(42)는 최근 몇 달새 손님이 크게 줄어 장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엔 하루 평균 70만원 어치를 팔았지만 요즘은 매출액이 50만원도 채 안돼 150만원의 월세를 내기에도 빠듯하다.

양씨가 과일장사를 접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아파트단지 부녀회가 정기적으로 열고 있는 ‘알뜰시장’ 때문이다. 상인 1명당 2만∼3만원의 자릿세를 받아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취지는 좋지만 품목이나 횟수 제한 없이 외부 상인들을 불러 들이는 바람에 상가 전체가 침체에 빠졌다.

그동안 부녀회측에 하소연도 하고 으름장도 놓아 봤지만 효과가 없었다는 게 양씨의 말이다.

이런 현상은 이 곳 뿐만 아니라 다른 아파트단지들도 마찬가지여서 최근 아파트상가 상인들이 집단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알뜰시장 실태〓양씨의 가게가 있는 지역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10여개의 아파트 단지가 오밀조밀 모여 있다.

알뜰시장은 그동안 간헐적으로 열렸지만 올해 초부터는 아파트단지 서너곳씩을 묶어 월, 수, 목, 금요일 등 매주 하루씩 열리고 있다. 게다가 단지간 거리가 가까워 주민들은 거의 일주일 내내 이용할 수 있다.

10여 가지의 품목 가운데 특히 생선 채소 과일 등 1차 식품은 일주일치를 한꺼번에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아 같은 업종의 상가 점포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부천시 아파트상가연합회 오학수 회장은 “말이 알뜰시장이지 재래시장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라며 “횟수라도 줄여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인 곳은 극히 일부”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인천지역도 마찬가지. 특히 98개의 아파트단지가 있는 연수구와 160여개 아파트단지가 있는 계양구에서 민원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계양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알뜰시장에 같은 품목이 포함되지 않도록 아파트 상가의 점포가 아예 자릿세를 대신 내기도 한다.

▽상인들의 집단 대응〓부천시 아파트상가연합회는 시내 38개 아파트단지에서 알뜰시장이 열리고 있는 만큼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 고소 고발 등 법적 대응을 강구하고 있다.

이들은 아파트단지 주차장에서 알뜰시장을 여는 것 자체가 불법 용도변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부녀회장은 “좋은 취지의 일인데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기 때문에 당장 없애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인연합회측은 “부녀회측이 외부 상인들과 1년씩 계약을 하는 바람에 발목을 잡힌 꼴”이라며 “부녀회장의 임기까지만 이해해 달라지만 부녀회장이 바뀌면 되풀이될 게 뻔하다”고 말했다.

▽대책은 없나〓벌써 몇 년째 이런 갈등이 계속되고 있지만 행정기관에서는 주민들이 장소를 제공한 알뜰시장을 강제로 폐쇄하거나 횟수를 줄일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부천시 관계자는 “주차장 점유는 일시적인 것이어서 처벌하기 어렵고 다만 떡볶이 등 음식을 판매하는 경우는 식품위생법으로 단속할 수 있다”며 “입주민과 상가 상인들이 협의해 방법을 찾는 것외에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박승철기자 parkk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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