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리포트]'한줄서기' 시민의식 아직은 먼듯

  • 입력 2002년 9월 15일 18시 42분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전국적으로 펼쳐졌던 ‘아름다운 화장실 만들기’ 운동의 덕분인지 요즘 공공장소에 마련된 화장실이 예전보다 한결 깨끗해졌다는 느낌을 준다.

가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딸과 함께 찾곤 하는 집 근처 공원 화장실에도 언제부터인지 깨끗하고 아담한 거울과 향기로운 방향제가 갖춰졌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문구처럼 요즘은 청소를 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화장실을 보기 힘들어진 게 사실이다.

이쯤되면 자연스럽게 ‘우리 시민의식도 많이 향상됐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게 우리 화장실 문화의 현 주소이다.

많은 부분이 개선되긴 했지만 정작 ‘줄서기’에 있어서 만큼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해 봄에 대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잘못 타서 당초 목적지인 부천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서울남부터미널에 내린 일이 있었다.

목적지가 바뀐 것에 대한 걱정은 둘째치고 심한 교통체증으로 버스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다시피 한 탓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을 찾아야 했다.

지하철과 연결된 그 곳 공중화장실은 예쁜 벽걸이 장식에다 화장대와 헤어드라이어기 등이 갖춰져 있어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여러 개의 줄 가운데 유독 내가 서 있던 줄만 쉽게 줄지 않아 차례를 기다리며 무척 당황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 가족은 명절 때마다 고향 집에 가기 위해 대여섯 시간씩 고속도로 위에서 시달리는 탓에 아이들은 휴게소에만 닿으면 환호성을 지르곤 했다. 몇 시간씩 참았던 ‘볼일’을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었지만 막상 화장실을 찾은 아이들은 북새통을 이룬 귀성인파에 밀려 당혹스러운 경험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화장실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옆 줄은 안 그런데 왜 내가 선 줄만 이렇게 더딘건지….’

몇 년전부터 ‘한줄로 서기’ 운동이 펼쳐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생활 습관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공원이나 지하철역과 같은 공공장소는 물론 심지어 아이들이 뛰놀며 배우는 학교에서조차 한줄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질서는 누구를 강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의 편의와 행복을 위한 것이다.

화장실 앞에서도 운을 따지거나 자신의 차례를 독촉하며 거친 말이나 행동을 보이는 것도 줄서기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는다면 한낱 옛 이야기거리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번 추석 연휴는 기간이 짧지만 수해를 당한 가족이나 친지를 위로하고 힘을 보태기 위해 귀성인파가 예년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만원 사태를 빚을 것이 뻔한 휴게소에서 내가 먼저 한줄서기를 실천한다면 더딘 귀성길의 짜증과 스트레스가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박미향

(37·부천복사골문화센터 독서논술토론 강사·mhparkl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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