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사흘 앞둔 18일 수해지역 주민들의 마음은 스산하기만 하다.
수해로 보금자리를 잃었지만 비좁은 컨테이너 속에서 차례를 지낼 수 있는 가정은 그나마 다행이다.
수해로 조상의 묘가 유실됐거나 가족이 실종돼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유족들은 추석 차례상 차리기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허전함과 고통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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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가족〓지난달 31일 급류에 실종된 맏딸(20)을 아직도 찾지 못한 강원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 윤은노씨(46·농업) 부부는 딸을 찾아 헤매다 이제는 지쳐서 강릉시에서 공급해준 컨테이너 안에서 넋잃은 사람처럼 지내고 있다. 맏딸의 생사 걱정에 추석 차례는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다.
부인(35)과 두 딸(7, 4세)을 한꺼번에 잃은 강릉시 강동면 대동리 염규태씨(42)도 부인의 시신만 겨우 찾았을 뿐 두 딸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강원 도내에서는 아직 실종자 17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급류에 딸(26)을 잃은 경북 김천시 부항면 희곡리 주민 이모씨(60)는 추석이 다가오자 마음이 더욱 무겁다. 이씨는 “딸의 시신이라도 찾아야 조상을 뵐 면목이 있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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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유실 가족〓2200여기의 묘 가운데 300기가 유실되고 500기가 매몰된 강릉공원묘원에는 추석을 앞두고 찾아온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가족들은 유전자와 지문감식을 통해서라도 유해를 찾으려고 애쓰지만 추석 전까지는 확인이 불가능해 성묘는 불가능한 상태.
어머니의 묘가 유실된 김종철씨(51·강원 동해시 동해동)는 “지난달 31일부터 매일 공원묘지에 와서 흔적 없이 사라진 어머니의 유해를 찾아다니고 있다”며 “그러나 어머니 유해의 특징을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울먹였다.
김씨는 “추석 때 이곳의 합동분향소에 찾아올 생각이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제사를 모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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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차례〓태풍으로 큰 피해를 본 김천지역에는 18일부터 5.5평 크기(3×6m)의 컨테이너 집이 보급돼 집을 잃은 수재민들이 아픈 마음을 추스르며 추석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컨테이너 집 8개가 설치된 김천시 대덕면 화전 2리 주민들은 “서글픈 일이지만 올해는 컨테이너 안에서 차례를 지내야겠다”고 말했다.
경북도와 김천시는 당초 합동차례를 준비하려 했으나 주민들이 컨테이너 안에서나마 직접 차례를 지내겠다고 해 합동차례는 준비하지 않기로 했다.
컨테이너 집에서 추석을 맞을 수재민은 경북 도내에서 180여 가구에 이른다.
폭우로 1명이 실종되고 60가구 중 20가구가 부서지거나 침수되는 피해를 본 전남 광양시 옥룡면 옥동마을 정순옥 이장(50)은 “수해를 당한 주민들이 임시로 만든 판잣집과 컨테이너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명절 분위기가 나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강릉〓경인수기자 sunghyun@donga.com
김천〓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광양〓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