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위는 꽉 막힌 청계고가도로에서 찍은 ‘오아시스’의 한 컷, 아래는 중구 필동 남산 한옥마을에서 ‘청풍명월’을 촬영하고 있는 장면이다.사진제공 서울영상위원회
출소 후 형이 운영하는 카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종두는 손님의 차를 훔쳐 공주를 태우고 드라이브에 나선다.
밤이고 꽉 막힌 도로다. 종두는 차를 세우고 서울의 야경을 보여주겠다며 공주를 안고 밖으로 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량 행렬 옆에서 꿈을 꾸듯,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돈다.
이 장면을 촬영한 장소가 바로 청계천 복원을 위해 철거될 운명에 놓인 서울의 청계고가다.
서울이 이처럼 영화 촬영장소의 주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올 4월 서울시가 ‘서울영상위원회’(위원장 황기성)를 출범시키면서 시내 낯익은 거리와 명소들이 스크린에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위원회는 서울시는 물론 서울지방경찰청, 서울시교육청, 철도청, 문화재청, 한국관광공사, 서울지하철공사 등이 참여한 지원기관협의회를 열어 영화 촬영을 위한 행정 지원에 나서고 있다.
사실 종전까지 서울시내, 특히 번잡한 도로에서 영화를 찍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다. 영화계에서는 “촬영 허가가 나지 않아 서울의 장면을 부산까지 내려가 찍는 영화도 연간 수십편”이라고 말했다.
제59회 베니스영화제 감독상과 신인연기상에 빛나는 ‘오아시스’도 자칫하면 청계고가도로 장면을 찍지 못할 뻔했다. 서울시의 허가는 받아냈지만 교통혼잡을 이유로 강력히 반대한 경찰측의 벽에 부딪힌 것.
하지만 위원회의 ‘전방위 로비’에 경찰은 결국 차량이 뜸한 올 5월19일 새벽에, 최소한의 교통통제를 조건으로 촬영을 허락했다.
‘오아시스’ 외에 위원회가 적극 나서 장소를 알선해준 미개봉 영화는 모두 12편이나 된다.
한강을 배경으로 ‘마들렌’과 ‘데우스마키나’를 찍었고, 남산 한옥마을에서는 무협 액션물 ‘청풍명월’, 지하철에선 ‘튜브’와 ‘스턴트맨’ 등을 각각 촬영했다.
이 밖에 서대문형무소(‘광복절 특사’), 남산 1호터널(‘피아노 치는 대통령’), 상도역 앞 사거리(‘4인용 식탁’) 등 예전 같으면 ‘그림의 떡’이었을 장소들이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한편 ‘오아시스’의 이창동 감독은 영화 촬영 지원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19일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을 방문했다. 이 감독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청계천 주변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많지만 모두 허가를 받지 못해 ‘도둑 촬영’한 것들”이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서울을 문화도시로 육성하기 위해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내를 배경으로 한 영화 | |
영화 | 장소 |
오아시스 | 청계고가도로 |
마들렌 | 한강시민공원 서울역 등 |
휘파람공주 | 명동 주차장 및 차없는 거리 |
데우스마키나 | 한강 |
청풍명월 | 남산 한옥마을 |
광복절 특사 | 서대문 형무소 |
품행제로 | 교육청 및 정독도서관 |
튜브 | 지하철 |
살인의 추억 | 전경부대 |
4인용 식탁 | 상도역 앞 사거리, 강변북로 등 |
빙우 | 북한산터널 공사장 |
피아노치는 대통령 | 남산 1호터널 |
스턴트맨 | 혜화역 수서역 |
(*오아시스 외에는 모두 미개봉작)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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