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5시 개구리 소년들의 유골이 실종 11년 반 만에 발견된 대구 달서구 용산동 와룡산 중턱.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온 유족들은 넋을 잃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유골 발굴 현장은 순식간에 유족들의 통곡과 신음으로 가득 찬 비극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아들들이 어엿한 청년이 돼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부모들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유골을 보는 순간 “믿을 수가 없다”면서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흐느꼈다.
김영규군(당시 11세)의 어머니 최경희씨(48)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갖고 온 우황청심환을 손에 쥔 채 먹지도 못하고 유골만 응시했다.
최씨는 “우리 영규는 아닐 겁니다. 믿을 수 없어요. 지금도 영규가 돌아올 것 같아 밤마다 문을 열어 놓고 있는데…”라고 말하다 끝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영규군의 아버지 김현도씨(59)는 “경북 구미에 출장갔다가 소식을 듣고 달려 왔는데 유골을 보는 순간 아들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다”면서 “유골을 덮고 있는 체육복은 당시 내가 운동하라며 사준 옷인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10년 동안 아들을 찾아 헤매다 지난해 10월 간암으로 세상을 뜬 김종식군(당시 9세)의 아버지 김철규(金鐵圭·사망 당시 49세)씨를 대신해 현장을 찾은 종식군의 삼촌은 조카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종식이의 유골이 아니다”며 애써 눈물을 감춰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유골을 처음 본 순간 반신반의하던 유족들은 “아이들이 어떻게 야산에 11년 동안이나 매장돼 있다가 갑자기 발견될 수 있느냐”며 “아이들의 사망 원인이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종 당시 우철원군의 담임이던 김광자 교사(40)는 “아이들이 반드시 살아 돌아올 줄 알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성서초등학교 이영숙 교사(48·여)는 “4년 전 학교에 부임하면서 ‘실종된 어린이 5명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면서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돌아오면 언제든지 복학할 수 있도록 학적을 정원 외로 특별 관리해 왔는데 허사가 됐다”고 말했다.
김영규군의 친구 강용찬군(19)은 “영규가 실종된 지 11년이 지났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정말 안타깝다. 지금도 영규가 ‘용찬아’ 하며 나타날 것 같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대구〓정용균기자 cavatina@donga.com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일지▲
△91년 3월 26일=대구 성서초등학교 어린이 5명 개구리 잡으러 갔다가 실종
△91년 7월 5일=경찰 50명 25개조로 특별수사대 편성
△92년 11월=실종사건을 영화화한 '돌아오라 개구리 소년' 개봉
△93년 1월=실종 어린이 부모들, 김영삼 당시 대통령 당선자에게 탄원서 제출
△93년 9월=실종 어린이 부모들, 자식들에 대한 직접 수색 작업 포기
△95년 7월=경찰, 실종 어린이 5명의 변모된 얼굴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생시킨 전단 2만여장을 제작해 전국 경찰에 배포
△96년 5월=대구지방경찰청 수사본부 해체, 달서경찰서장을 본부장으로 한 수사본부체제로 전환
△2001년 10월 22일=실종 어린이 아버지 1명 간암으로 사망
△2002년 9월 26일=대구 달서구 용산동 와룡산 4부 능선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편에서 실종 어린이들로 추정되는 유골 발견
대구〓정용균기자 cavat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