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검찰은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아 수백개의 차명계좌로 관리해왔다”며 신한국당이 김 총재를 고발한 사건에 대한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서 본격 수사에 착수할 경우 대선 전까지 결론을 내는 것이 불가능해 단순 의혹 해명 차원의 수사는 정치적 중립성을 해칠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었다.
당시 검찰 내부에서는 상당한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수사 착수 여부를 놓고 내부 의견과 정치권, 여론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수뇌부에게 보고하기도 했으며 이 문제로 수차례 고검장 회의를 갖기도 했다. 검찰의 수사 유보 결정을 놓고 ‘청와대 교감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 후 확인된 바로는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김태정(金泰政) 검찰총장을 불러 직접 수사중단을 지시했다.
이번 사건도 대선 직전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점이나 수사 결과가 대선 정국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 폭발력이 강한 ‘핵폭탄급 정치사건’이라는 점에서는 97년과 비슷한 상황. 하지만 DJ 비자금 수사의 경우 수사 착수 여부를 놓고 검찰이 고심했던 반면 4000억원 지원 의혹 사건은 수사 착수 여부가 아닌 수사 범위가 문제가 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검찰이 “사건의 본질은 4000억원의 사용처 규명이 아니라 한광옥(韓光玉)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불법대출을 지시했는지 여부”라고 강조하며 수사 범위를 좁히려 하는 것도 수사에 따른 정치적 파장을 우려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