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비리폭로로 비쳤던 이 사건은 그러나 장막 뒤에서 백씨가 국민회의 및 민주당 관계자들과 ‘폭로 보상금’ 잔액 지급을 둘러싸고 이전투구를 벌인 것으로 드러나 귀추가 주목된다.
▽매수와 폭로〓소장에 따르면 백씨는 96년 2월 서울 강남에서 아는 사람을 통해 오 실장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청와대 고위 인사의 돈 심부름을 했다…억울하게 이혼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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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은 오 실장은 백씨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운영하던 노래방에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가 청와대 고위인사의 비리를 캐묻기 시작했다는 것.
96년 3월초 오 실장은 다시 백씨를 찾아와 “이 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일절 알리지 않고 자세히 말해주면 보상금을 많이 주겠다”고 했고 백씨는 장씨의 비리를 오 실장에게 이야기했다.
이후 오 실장은 장씨의 비리 사실을 하나씩 수집했고 백씨가 소유하고 있던 관련 서류를 모두 가져갔다는 것이다.
오 실장은 장씨 비리를 폭로할 경우 △현금 1억원과 자녀 대학자금 제공 △큰 빌딩 내 구내식당과 올림픽공원 내 매점 제공 △총재의 황금열쇠 시상 △집 이사 지원 △신변 보호 등을 조건으로 제시했다는 게 백씨의 주장.
이어 백씨는 96년3월22일 공개기자회견을 통해 장씨의 비리를 폭로했다. 기자회견 날짜는 오 실장이 잡았다고 백씨는 소장에 기록했다.
▽틀어진 밑거래〓폭로 이후 백씨는 ‘거래대금’에 불만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회의측은 백씨의 예상과 달리 96년3월부터 99년9월까지 8000만원만 지급했던 것. 백씨는 99년에 받은 4000만원을 누가 준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백씨는 나머지 조건 이행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올 8월과 9월에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민주당 당사를 찾아가 당 관계자 3명을 만났다. 전화통화도 수시로 시도했다.
백씨의 소장 및 함께 제출한 녹취록에 따르면 민주당 차모 민원실장은 백씨에게 올 8월 30일 오후 4시까지 오면 정신적 피해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9월7일 찾아갔을 때 김모 국장은 “형편이 어렵다”며 보상금 지급을 미뤘다고 백씨는 주장했다.
백씨는 또 한화갑(韓和甲) 대표의 비서인 서모씨가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를 제보한 김대업(金大業)씨가 5억원을 청구했으니 (백씨는) 2억∼3억원을 청구하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김대업씨에게 ‘폭로보상금’을 지급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밝혔다는 것.
그러나 서씨는 14일 당 부대변인을 통해 백씨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백씨가 하도 귀찮게 하기에 김대업씨도 한나라당에 명예훼손으로 5억원을 청구했다. 당신도 이렇게 찾아다니지 말고 (민주)당에 2억원이든 3억원이든 소송을 제기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백씨는 결국 민주당을 상대로 약정금 손해배상 소송을 4일 법원에 냈다. 당시 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약속이행의 책임이 있다며 ‘피고’로 적시하는 등 극한 수단을 쓰고 있다.
백씨의 주장은 재판을 통해 사실 여부가 가려질 전망이다. 하지만 오 전 실장과 민주당 관계자가 ‘당과 무관한 개인 돈’이라 하더라도 백씨에게 3년에 걸쳐 8000만원이나 전달한 이유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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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관련 당사자들 반응▼
1996년 3월 장학로(張學魯)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비리 폭로가 제보자 매수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관련자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제보자 백혜숙씨와 함께 비리를 폭로한 오길록(吳佶錄) 당시 국민회의 종합민원실장은 14일 “폭로 후 백씨가 돈을 달라고 졸라 개인 돈 4000만원을 줬으나 단순한 위로금이며 당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오씨는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에게 백씨의 돈 요구 사실을 보고하자 ‘돈을 절대 주면 안 된다. 역공작일 수도 있다’고 말해 백씨를 설득했다”며 “구내식당이나 공원 매점건은 ‘집권하면 도울 일이 있지 않겠느냐’고 가볍게 한 얘기였다”고 일축했다.
그는 정권교체 직후 수뢰혐의로 구속되는 등의 잡음으로 당을 떠나 현재는 별다른 직업이 없다.
또 장씨는 “나는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 다 끝난 일로 정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서 “거래 사실은 몰랐지만 당시 매스컴에서 그런 이야기가 언급됐고 정치권에서도 공방이 있었다”고 말했다.
장씨는 “폭로 전 백씨가 돈을 요청한 적은 있지만 백씨가 부도덕한 일로 요구한 것 같아 돕지 않았다”며 “국민회의가 돈을 주고 사주했다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96년 뇌물수수죄로 4년형을 선고받은 장씨는 그해 11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현재 민주산악회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