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책임' 2심도 무죄

  • 입력 2002년 10월 17일 19시 39분


강경식씨 / 김인호씨
강경식씨 / 김인호씨
97년 말 외환위기를 초래한 혐의로 기소된 강경식(姜慶植)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金仁浩)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도 원심대로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3부(손용근·孫容根 부장판사)는 17일 두 사람의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하고 강씨의 직권남용 부분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축소 보고해 환란을 초래했다는 직무유기 혐의는 검찰이 기소를 잘못한 것으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단은 적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강씨가 대출압력을 넣은 진도그룹은 97년 말 1800%가 넘는 부채비율로 지급불능이 우려된 상황이었고 은행 실무자들도 대출불가능 판단을 하고 있던 상황”이라며 “당시 경제부총리라는 피고인의 지위에 비춰 대출 부탁을 ‘선의’로만 볼 수 없어 자격정지를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외환위기 실상보고 축소, 외환시장 개입 중단지시, 부당 대출 압력 등의 혐의로 98년 구속 기소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뒤 1심에서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직권남용 중 진도 및 해태에 대한 부당 대출 압력에 대해서만 자격정지 1년에 형 선고유예를 받았다.

▼"정책실패 사법처리 못한다"▼

97년 환란(換亂)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공방에서 법원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강경식(姜慶植)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金仁浩)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들에게 무죄가 선고됨으로써 정책판단 실패에 사법의 잣대를 들이댄 검찰로서는 무리하게 법을 적용, 이들을 기소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1999년 강씨 등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구시대적 발상, 시대착오적 논리’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사용하며 반발했던 검찰은 이번에는 “여러 가지 고려할 것이 많다”며 상고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애당초 검찰의 기소 자체가 무리였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환란 과정에서 경제관료들이 정책판단을 잘못해 나라를 ‘국제통화기금(IMF) 수렁’에 빠뜨린 데 대해 도덕적 비난은 가능하지만 사법의 잣대로 단죄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정신에도 어긋난다는 것.

그러나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이들에게 무죄가 선고된 데 대해 시민들 사이에서는 “전 국민을 고통에 몰아넣은 IMF체제를 야기해 놓고도 책임을 지는 정책집행자가 아무도 없게 됐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경실련 고계현(高桂鉉) 정책실장은 “정책을 집행하는 공직자나 정치인들은 형법상 유죄 여부를 떠나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공직자들의 정책실패 책임을 어떤 식으로 물을지에 대해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강씨는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며 “유죄가 선고된 직권남용 부분은 대법원에 상고해 정당한 판단을 받겠다”고 말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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