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 "재정확보 쉽다"…사행성시설 우후죽순 유치

  • 입력 2002년 10월 21일 18시 31분


19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실내경마장(장외마권발매소). 경마 시작 30분 전부터 주차장(280대 규모) 진입로는 폐쇄됐고 주변 도로는 인도까지 차량이 들어찼다.

이날 하루 4000여명이 찾으면서 오후부터는 삼성플라자 분당점 등 주변의 대형 유통매장을 찾는 쇼핑 차량들과 뒤엉켜 주변 도로는 난장판으로 변했다.

수도권 일대에 실내외 경마장과 경륜장, 경정장 등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교통난이 심각해지는 등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자 주민들의 집단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원 실태〓올 7월 개장한 경기 시흥시 정왕동 안산선 정왕역 앞 실내경마장 일대는 더욱 심각한 상태. 이날 2100여명이 입장했으나 주차공간은 69대에 불과해 역 주변 도로는 물론 인근 아파트 주차장까지 외지 차량들이 점령했다.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장의 경우도 올 4월 관람석이 기존 3만9000석에서 7만9000석으로 대폭 늘어남에 따라 주말이면 과천지역 전체가 심한 교통 체증으로 몸살을 앓는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해당 자치단체에 계속 민원을 제기하고 있으나 자치단체들은 세(稅)수입의 증가,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명분으로 이런 시설들을 계속 유치할 계획이어서 주민들과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4개월 째 농성중인 ‘시흥 실내경마장 철폐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대표 김병선·金炳善·43)는 “경마장은 지역 주민을 도박 중독자로 만들고 주말 교통난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수도권 경마장 주변 주민들과 연대해 실력행사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왜 늘어나나〓한국마사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에 따르면 경기도에는 성남시 분당과 수원시 등지에 실내 경마장 9곳, 분당과 고양시 일산 등지에 실내 경륜장 5곳, 과천시 서울경마장, 하남시 미사리 경정장 등 모두 16곳의 레저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2005년에는 3만명 수용 규모의 실외경륜장이 광명시에 들어선다. 또 경기지역 3, 4개 자치단체도 실내 경마장을 유치할 생각으로 현재 한국마사회 측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송진섭(宋振燮) 안산시장도 최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시화호에 경정장을 유치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수도권의 레저시설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자치단체들이 내세우는 이들 시설의 유치 명분은 엄청난 세수입 때문. 경기도는 지난해 레저세로 4465억원을 걷어들였다. 이는 도 전체 세수입 4조671억원의 10.9%를 차지한다.

레저세 가운데 해당 자치단체의 몫은 30∼40%가량. 과천시는 서울경마장 세수입 덕택으로 재정자립도 98%를 기록하고 있다.

▽해결책은 없나〓이들 레저시설은 대형 교통유발시설인데도 별 규제를 받지 않고 도심지 상업지역이나 주택가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한 현행 법령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실내 경마장과 경륜장 등은 건축법상 ‘문화 및 집회시설’로 분류돼 연면적 1만5000㎡ 미만일 경우 교통영향평가 대상에서 제외되고 일반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에도 위치할 수 있다. 주차장 확보 기준도 자치단체별 조례에 따라 100∼150㎡당 1대에 불과해 현행법으로는 적절한 규모의 주차장을 확보하도록 강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경원대 도시행정학과 송태수(宋泰洙) 교수는 “인구유발 효과가 큰 데도 시설입지 규제가 너무 허술하다”며 “입지조건을 제한해 시 외곽에 설치하도록 유도하고 주차장 관련 규정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원〓남경현기자bibulus@donga.com

황금천기자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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