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영천 화산중 '꽃뫼 아해들' 학교신문 만들기

  • 입력 2002년 10월 21일 21시 34분


“유진아. 안녕. 담임선생님이다. 늘 보지만 이렇게 편지를 쓰려니까 좀 서먹서먹하네. 중학생 된지도 꽤 오래됐지? 네가 보내준 편지 읽고 이렇게 답장 쓴단다…”(교사가 학생에게)

“처음으로 사랑하는 딸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 같구나. 미안하다. 항상 너의 편지 받을 때 답장을 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쓰게돼 아버지가 할 말이 없구나….”(학부모가 자녀에게)

경북 영천시 화산면 유성리 화산중(교장 오수현·吳秀賢) 전교생 64명은 한달에 두 번씩 ‘꽃뫼 아해들’이라는 신문을 만든다. 벌써 4년째. 지난 토요일에는 50호 발간을 기념해 교직원 14명과 학생들은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

‘꽃뫼’는 학교가 있는 화산(花山)의 우리말. A4 용지 24쪽 분량으로 ‘꽃뫼 아해들’에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포함해 중학생들에게 필요한 책과 영화, 컴퓨터, 직업, 상식 등을 꼼꼼하게 담는다. 100부가량 만들어 전교생과 교직원, 졸업한 선배, 전근간 선생님들께 나눠준다.

꽃뫼 아해들은 침체되기 쉬운 농촌 소규모 학교에 활력을 불어넣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대학생 때 학교신문 기자로 활동했던 박성진(朴星振·27·영어) 지도교사는 “도시의 큰 학교와 비교하며 열등감을 갖기 쉬운 학생들이 꽃뫼 아해들을 만들면서 자신감을 얻는 것 같다”고 했다.

꽃뫼 아해들이 나오는 날을 가장 기다리는 쪽은 역시 학생들. 편집 책임을 맡고 있는 3학년 현은수(玄恩洙·16)양은 “학교 구석구석을 살피는 기자들이 12명이지만 실제로는 전교생이 참여해 만드는 셈”이라며 “시골이지만 지구촌 소식까지 담아 친구들이 넓은 세상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산중 학생들은 일본에도 친구들이 생겼다. 월드컵을 앞둔 5월 일본 오이타(大分)현 마에찌에(前津江) 중학교 학생들이 방문해 월드컵 성공을 기원하며 축구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화산중과 비슷한 규모의 농촌 학교인 마에찌에 학생들은 한달에 한번 정도 화산중 학생들과 편지를 나누며 우정(友情)을 이어가고 있다.

꽃뫼 아해들 덕분에 학생들은 글쓰고 사색하는 태도도 저절로 돋아났다. 8월말에는 전교생과 교직원, 동문, 다른 학교로 떠난 교사들이 주고 받은 편지 150통을 묶어 ‘전교생이 참여한 사랑의 편지-꽃뫼 씨알들’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오 교장은 “꽃뫼 아해들을 통해 학생들은 다른 학교로 간 선생님들의 이름을 오래 기억하며 편지를 나눈다”며 “작은 학교지만 학생들이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054-335-5116

영천〓이권효기자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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