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울대총장의 비뚤어진 여성관

  • 입력 2002년 10월 24일 18시 32분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한명숙 여성부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언급한 ‘우 조교 성희롱 사건’에 대한 발언은 신중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매우 부적절했다.

정 총장은 법원에서도 성희롱을 인정한 사건에 대해 “과장됐다”고 말함으로써 사법부의 권위를 부정했다. 엄격한 법적 잣대에 의해 종결된 사안을 “터무니없는 소리인데 판결이 나버리고 나니 그만”이라고 한 것은 공직자 신분으로서 성희롱 근절을 위한 정부기구인 남녀차별개선위원회의 위원장이자 여성부장관인 사람에게 할 말이 못된다.

정 총장은 또 이 사건이 재계약에서 탈락된 우 조교의 앙심에서 비롯된 일로 당하는 사람은 죽을 맛이라고 했다. 성희롱이 으레 있을 수도 있는 일이며 가해자인 남성이 오히려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우 조교 사건은 성희롱이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임을 인식시킨 국내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소송으로, 여성문제에 있어 사회적 성숙의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정 총장은 기관 내 성폭력 문제를 다스릴 책임이 있는 기관장이다. 그런데 가해자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성희롱이 범죄행위임을 망각한 경솔한 일이다.

게다가 정 총장은 “여성운동도 신중해야 한다”는 말로 마치 옳지 않은 일에 여성단체가 나서는 것처럼 여성운동을 폄하했다. 정 총장은 발언 하루 만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으나 그의 ‘흉금을 터놓은’ 발언은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가부장적 보수성과 왜곡된 여성관의 일면을 드러낸 것이어서 개운치 않다.

최근 들어 서울대 여학생들은 법여성학의 신설과 여교수 채용 확대, 강의실 성차별 추방 등을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정 총장의 사과 역시 실언이 아니라면, 이들 여학생을 포함한 서울대생의 교육을 맡고 있는 책임자로서 앞으로 여학생 및 여교수의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직접 보여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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