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첨단장비 50대 투입 要人 휴대전화 광범위 도청"

  • 입력 2002년 10월 25일 06시 38분


국가정보원(원장 신건·辛建)이 올 들어 휴대전화를 도청할 수 있는 첨단장비를 50대로 늘려 정관계 재계 언론계 등의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도청을 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돼 큰 파문이 예상된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도청이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국정원의 한 관계자가 본보에 제보해 온 내용이다.

이 관계자는 24일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에서 휴대전화 도청용 첨단장비를 기존의 20여대에서 올 상반기에 50대로 늘려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첨단장비가 휴대전화 통화내용을 도청할 수 있는 가청거리는 반경 1㎞이며 이 장비를 탑재한 국정원 승용차가 정관가와 언론사가 밀집된 서울 여의도, 세종로 일대, 서초동과 경기 과천시 등지의 목표 건물 주변에서 도청활동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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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전화 번호만 알면 통화-위치 도청

국정원이 도입해 운용하고 있는 이 도청장비는 세계적인 도감청기 제조업체인 미국 CSS사가 만든 ‘G-COM 2056 CDMA’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통신보안업계 관계자들은 “휴대전화 도청장비는 차량 탑재용과 휴대용이 있는데 ‘G-COM 2056 CDMA’은 휴대용”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당 가격이 3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도청장비는 007가방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도청장치와 수신장비에 암호기능이 있다.

노트북PC와 함께 사용되는 이 장비는 대당 1000개 정도의 도청대상 전화번호를 입력할 수 있으며 그 대상번호의 휴대전화가 발신 또는 수신될 경우 이를 감지해서 도청장비가 작동되고 도청한 내용은 바로 암호로 바뀌어 국정원 담당부서로 보내져 이를 해독하는 방식이다.

국정원은 효율적인 도청을 위해 타깃(주요 도청대상자 명단)으로 설정한 정관계 재계 언론계 등 주요 인사의 휴대전화 번호를 미리 입수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감청 작업은 국정원 2차장 산하의 특별기구가 담당하고 있으며 이 기구의 이름은 수시로 바뀌고 작업도 극비리에 진행된다는 것. 따라서 국정원 내에서도 관련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도 이 같은 정보를 국정원 전현직 관계자들로부터 한 달여 전에 입수해 관련 사실을 상당 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의원은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런 정보를 국정원 전현직 관계자들로부터 입수해 확인했다”며 “그러나 어떤 내용을 확인했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한편 국정원 유인희(劉仁熙) 공보관은 “도청을 안 하기 때문에 그런 장비가 있을 리 없다. 공연히 국정원이 오해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도청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사회1부

▼검찰, 금감위장-대검간부 통화 도청 자체조사 나서▼

검찰이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과 이귀남(李貴男) 대검 범죄정보 기획관의 전화가 도청됐는지에 대해 자체 경위 조사에 나섰다.

검찰은 24일 이 위원장이 ‘4000억원 대북 비밀지원설’에 대한 축소 수사를 요청했다는 말이 도청 없이는 나오기 어렵다고 보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통신비밀보호법상의 범죄는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에 수사단서가 잡히면 검찰이 인지(認知) 수사를 통해 밝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검찰의 대응은 통신비밀보호법상 불법 도청 감청 수사를 위한 사전 단계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은 정형근 의원이 문제의 통화 내용이 국정원 감청 자료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가정보원이 이를 부인하는 등 도청 감청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수사에 바로 착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도청은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하기 때문에 불법이지만 감청은 영장을 발부받아 합법적으로 하는 것이다.

검찰은 이 위원장과 이 기획관 중 어느 한 명이 사무실에서 유선 전화를 사용했을 경우 대검청사와 금융감독원 건물 안에 있는 유선 전화 단자함과 KT(옛 한국통신) 여의도지점과 반포지점의 교환기에 도청 감청 장비가 설치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조사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국정원이 자체 감찰을 통해 감청 여부를 명확히 가려내면 도청 감청 수사 착수 여부를 빨리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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