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구속되면 회사 쪼개고 나누고…변칙 다단계업체 극성

  • 입력 2002년 10월 25일 18시 54분


《지난해 퇴직한 이모씨(64·경기 성남시)는 최근 심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모 다단계 판매업체에 가입해 물건을 사면서 카드로 결제한 돈 1800만원 때문이다. 밑에 회원이 있으면 유리하다는 말에 친구들을 끌어들여 이들의 물건값까지 지불한 것이 화근이었다.》

9월 이 업체에서 탈퇴했지만 회사측은 두 달이 넘도록 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회사 대표가 올 초 ‘방문판매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됐지만 회사는 이름만 바꿔 달고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법행위가 적발돼 조직이 와해된 것처럼 보였던 다단계 판매업체가 느슨한 법망을 이용, 다시 새로운 업체를 만들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 업체의 설립 자체는 합법적이지만 서울시 소비자보호과에는 이들 업체로부터 본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새끼’치기 수법〓올 초 불법 다단계 판매업체를 수사한 서울의 한 경찰서에는 “문제의 회사들이 장소만 바꿔 영업 중”이라는 피해자들의 제보가 한동안 이어졌다.

사장이 구속되자 많은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고위 직급자는 자신의 조직을 통째로 데리고 나가 새 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다단계 판매업체가 ‘새끼’를 치는 일반적인 수법이지만 현행법은 한 업체의 회원을 모두 인수 또는 양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23일 오후 4시경 서울 강남구 한 다단계 판매업체의 사업설명회장. 40, 50대 남녀 100여명이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는 이 회사는 아직 등록이 안된 새끼 업체다. 업체 등록에 필요한 자본금 5억원을 회원들에게서 물품대금으로 미리 받아 마련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불법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E사는 1년 사이 상호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 원래 C사로 시작했지만 불법행위로 사장이 구속되자 이름을 D로 바꿨다가 다시 지금의 E로 변신했다.

이런 식의 상호 바꾸기도 새끼를 치는 수법 중 하나. 대표이사가 관련법을 어겨 형사처벌을 받는 등의 결격 사유만 없다면 상호를 변경할 수 있다. 최근에는 피라미드 컨설팅회사까지 등장해 새끼 업체의 설립을 자문해 주고 있다.

▽실태, 대책〓전국의 등록된 다단계 판매업체 수는 600여개. 서울에는 490여개가 등록돼 있으나 이 중 100여개는 새끼 업체로 변신했거나 등록이 취소됐다.

이런 업체들은 주로 회원수가 1만명 이하의 소규모로 운영된다. 지난해부터 올 7월까지 물품 대금을 환불해주지 않는 등의 불법행위로 서울시가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린 건수는 80여건. 그러나 실제로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서울시의 경우 다단계업체를 관리하는 직원이 2명에 불과하고 9월부터 관리 감독을 맡은 공정거래위원회 특수거래조사과의 다단계업체 담당직원도 1명에 불과해 제대로 된 감시활동은 역부족이다.

서울YMCA의 김희경(金希暻) 간사는 “다단계 판매업체의 등록요건과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소비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