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파란눈의 베이비 시터

  • 입력 2002년 10월 29일 15시 30분


초등학교 3학년인 정선경양이 캐나다에서 온 외국인 시터 바니와 영어 동화책을 읽고 있다. /김동주기자
초등학교 3학년인 정선경양이 캐나다에서 온 외국인 시터 바니와 영어 동화책을 읽고 있다. /김동주기자
《무남독녀 정선경양(9)에게 언니가 생겼다. 이름은 바니 배런, 나이는 열아홉. 금발머리의 바니는 캐나다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올 6월 중순 우리나라로 건너와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있는 선경이네 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바니는 해외의 일반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고 용돈을 벌며 그 나라의 문화도 체험하는 외국인 베이비 시터 프로그램 참가자. 선경이 어머니 이수성씨(38)는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의 영어 공부를 위해 바니를 맞아들였다.》

“외국인이 가르치는 영어 학원에 보냈는데 아이가 힘들고 재미없다고 투덜댔어요. 부정사 관사 등 문법 위주로 배우고 매일 단어 시험을 치러야 했거든요. 주변에서 외국인 베이비 시터를 영어 교사로 쓰는 집이 있기에 저도 시도해본 거예요.”

이씨는 외국인 베이비 시터 알선 업체에 의뢰했고 업체에서는 바니의 서류를 보내주었다. 졸업 증명서와 건강 검진 결과 시터 경력, 시터로 채용했던 주인 10여명의 추천서, 사진, 자기소개서 등 서류를 검토한 뒤 바니를 선택했다. 자기 소개서에는 11세 때부터 베이비 시터로 활동했으며 채식주의자이지만 고깃국 정도는 먹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바니는 매일 아침 선경이네 가족들과 샌드위치로 식사를 마친 뒤 외출했다 선경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쯤 귀가해 선경이와 놀아준다.

이씨가 선경이의 영어 공부를 강조해서인지 바니는 처음엔 책을 잔뜩 쌓아두고 선경이를 돌보는 시간 내내 가르치려 들었다. 이씨는 “그러지 말고 영어로 놀아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요즘엔 선경이가 예전에 다니던 학원에서 썼던 교재를 이용해 1시간 정도 공부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영어 동화책을 풍부한 표정과 성대 모사로 읽어주거나 함께 문방구에 가서 문구를 사고 서점에서 책도 고르고 텔레비전 보고 저녁식사 후에는 자매처럼 한방에 들어가 쏙닥쏙닥 수다를 떤다.

바니가 계약상 선경이를 돌봐야 하는 시간은 하루 4시간 뿐이다. 하지만 선경이가 워낙 붙임성이 있고 바니를 친언니처럼 따르기 때문에 오후에는 선경이가 학원에 가는 시간을 빼면 거의 붙어지내다시피 한다.

하지만 생활 문화가 다른 외국인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이씨로서는 바니의 존재가 반갑지만은 않다.

어른이 찾아와도 일어서지 않고 앉아서 고개만 돌려 눈인사하기, 겉옷 입은 채로 침대에 뛰어오르기, 베란다에 맨발로 나가 흙 묻혀 들어오기, 마루에 엎질러진 음료수를 걸레가 아닌 행주로 닦기, 인터넷 무한정 즐기기….

“잔소리 하는 것같아 그냥 참고 지나갔어요. 마음에 담아두고 있으려니 부글부글 속이 끓어 이야기를 했더니 기분 나빠하지 않고 잘 받아주더라고요. 처음 한두달간은 정말 힘들었었어요.”

외국인 뒷바라지가 쉬운 것은 아니다. 어른이 와도 앉아서 눈인사하기, 겉옷 입은 채로 침대에 뛰어오르기, 베란다에 맨발로 나가 흙 묻혀 들어오기, 인터넷 무한정 즐기기…. “참고 지내다 얘기했더니 기분 나빠하지 않고 잘 받아주더라고요.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아침은 흰빵을 못먹는 바니를 위해 이씨가 잡곡빵을 사두면 바니가 입맛대로 시금치와 양파 등을 날것으로 숭숭 썰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점심은 밖에서 사먹거나 집에 와서 라면이나 샌드위치를 챙겨먹고 이씨가 있는 날에는 자장면도 시켜먹는다. 저녁에는 된장찌개 비빔밥 갈비탕 삼계탕 등 한식으로 먹는다. 가끔 바니는 “요리해도 되느냐”며 스파게티나 닭요리를 해주기도 한다.

바니를 채용하면서 이씨는 신청금 30만원, 보험료와 항공료 360만원을 지불했다. 매월 70만원을 후불로 바니에게 준다. 계약 기간은 6개월. 3개월 후에는 1주일의 휴가를 주어야 하는데 대신 그 달에는 월급을 53만원만 준다. 바니는 주말을 제외한 주 5일 매일 4시간씩 아이를 돌봐줄 책임이 있다. 자신의 병원비는 자신이 부담한다.

11세때부터 동네 아이들을 돌봐주고 용돈을 벌어쓴 바니는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내년에 캘거리 대학교에서 여성학을 공부할 계획이다. 바니는 올 12월 귀국을 앞두고 이씨에게 “선경이를 데리고 갔다 크리스마스를 지낸 뒤 돌려보내겠다”고 제의했지만 이씨는 아이만 딸려보내도 되는지 아직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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