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성교육 실태와 과제

  • 입력 2002년 10월 30일 18시 04분


서울 동대문여중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임신, 콘돔착용등 성교육을 배우고 있다. - 안철민기자
서울 동대문여중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임신, 콘돔착용등 성교육을 배우고 있다. - 안철민기자
《29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1동 동대문여중 성교육 자료실. 3학년 학생들이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을 이용해 교사로부터 올바른 콘돔 사용법을 배우고 있었다. “콘돔은 피임 목적 외에도 에이즈 등 성병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찢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최우정 교사가 나무로 깎은 모조 남성 성기에 콘돔을 씌우자 학생들은 조금 쑥스러운 듯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김효선양(15)은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고 부끄러웠는데 지금은 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며 “단순히 성에 대한 지식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 등에 대해 알게 돼 유익하다”고 말했다.》

동대문여중은 서울시교육청이 지정한 성교육 및 양성평등교육 시범학교. 시교육청은 지난해 이 학교를 비롯해 청담고, 구일고, 세종고, 경복여자정보산업고 등 4개 고교를 시범학교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 성의식 급변〓10대의 성문화는 기성세대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인터넷 보급으로 청소년들이 그릇된 성 지식이나 음란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데다 청소년의 육체적 성장에 비해 의식의 발전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다. 올해 5월 경찰청과 한국갤럽이 중고생 21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4%가 성관계 경험이 있으며 이들의 첫 경험 시기는 17살(39%), 16살(24%), 15살(12%) 순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조사대상 700명의 중고생 가운데 13.1%가 ‘경우에 따라 성매매를 할 수도 있다’고 응답하는 등 청소년들의 성개방 풍조와 그릇된 성의식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성 가치관 교육이 우선〓교사들은 비교적 성지식이 풍부한 요즘 학생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여성의 상품화나 양성평등, 성희롱 대처법 등 성의식이나 실생활과 관련된 문제라고 말한다.

동대문여중 서상완 연구부장은 “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아이의 탄생 과정 등 성 관련 지식보다 실생활에서 성과 관련된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라며 “성교육은 이제 남녀의 신체적 특징 등 성 관련 지식 위주에서 성 가치관 교육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권위적인 아버지와 순종적인 어머니를 그린 역할극을 통해 가정에서의 성차별의 문제점을 느끼게 하는 방법도 사용된다. 지난해에는 ‘우리의 성은 사고 팔 수 있을까’를 주제로 마당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이 학교의 성교육 자료실에는 학생들이 이성 교제 등 실제 생활에서 부닥칠 수 있는 성과 관련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코너가 마련돼 있다. 남자 친구가 키스 등 신체적 접촉을 원할 때 자연스럽게 ‘위기’를 넘기는 방법에 대해 학생들이 각자의 의견을 제시한 사례집도 있다. 실제로 동대문여중 재학생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성관계를 경험한 2%의 학생 모두가 ‘상대방이 원해서 했다’고 응답해 어린 여학생들이 성과 관련된 상황이 닥쳤을 때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겉도는 학교 성교육〓교육인적자원부는 각급 학교별로 성교육 담당교사 1명을 지정하고 학년별로 1년에 10시간 안팎의 성교육 시간을 갖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1, 2시간은 반드시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를 위해 지난해 10시간 분량의 성교육 교사용 지도 지침서를 발간하고 담당교사 연수도 실시했다. 그러나 잡무에 시달리는 교사들이 성교육 시간을 별도로 내기가 쉽지 않고 성교육을 실시하는 교사들의 인식과 역량 차이가 천차만별이어서 체계적인 교육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실제로 교육부가 지난해 1만63개교 초중고를 상대로 실시한 ‘성교육 실태조사’에 따르면47.8%의 학교가 8시간 미만의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3시간인 학교가21.5%였고 성교육 담당교사가 아예 없는 학교도 6.3%나 됐다.

한 중학교 교사는 “제7차 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교사 업무가 크게 늘어 성교육에 할애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며 “강당에서 성교육 관련 비디오를 보는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성교육 관련 인터넷 사이트
기 관주 소
한국성문화연구소www.yline.re.kr
구성애의 아우성 www.youth-n.com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www.ppfk.or.kr
한국성폭력위기센터www.rape119.or.kr
성교육 전문 사이트www.ahsex.org
정광자의 성상담교실www.niceyou.pe.kr
아하! 청소년 성문화센터aha.ymca.or.kr
한국여성의 전화 연합www.hotline.or.kr
알고 싶은 성www.guidance.co.kr/newsite/clinic/sex05.asp
청소년 세계www.youth.co.kr
한국성폭력상담소www.sisters.or.kr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부모의 역할은…▼

성교육은 부모와 자녀, 학생과 교사간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스스럼없는 대화가 가능한 분위기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교육이 이뤄지려면 특히 부모의 적절한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서울 동대문여중이 지난해 4월과 올해 9월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학생들은 임신했을 때 상담하고 싶은 대상으로 부모(30%)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그러나 성 지식에 대해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대상은 학교수업 및 교사가 41%로 1위를 차지했고 친구 22%, 언론매채 11%, 인터넷 10%, 부모 7%, 선배 2% 등으로 가정에서의 성교육은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가 자녀와 성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 터놓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준비가 필요하다.

부모가 먼저 교육을 통해 요즘 아이들의 성문화에 대해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동대문여중이 지난해부터 학부모를 대상으로 ‘부모 역할 교육’을 실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부모가 전문 상담원의 상담요령을 대화를 통해 자녀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교육은 1주일에 3시간씩 모두 8주에 걸쳐 24시간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며 1기에 12∼15명씩 지금까지 5기수가 교육을 마쳤다.

학부모 이진옥씨(43·서울 광진구 중곡동)는 “아이와 성격이 많이 달라 평소에 갈등을 느 낀 적이 많았다”며 “교육을 받은 뒤에는 아이와 대화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밖에 YMCA의 ‘아하 청소년문화센터’ 등 사회단체에서도 학부모를 대상으로 청소년 성상담원 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교사기고▼

성교육은 범위가 너무 넓어 학교에서도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다. 성교육은 크게 ‘신체적 성교육’과 ‘성가치관 교육’으로 나눌 수 있다.

신체적 성교육은 육체의 성숙에 따른 정확한 성 지식을 제공해 성 비행을 예방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성교육은 이런 측면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성가치관 교육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여성 또는 남성에 대한 편견, 왜곡된 인식, 부정적 행동이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성 가치관을 확립하기 위해 학교에서는 적응활동 시간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다양한 성문화를 탐색하고 토론, 영화 관람, 인터넷 검색 등으로 올바른 성의식을 키워줄 수 있다. 교내 백일장에 양성(兩性)평등 관련 주제를 포함시키고, 문예물, 칼럼, 나의 주장 등 다양한 글을 공모하며, 논술 경시대회를 실시할 수 있다.

또 음악 시간에 대중 가요 속의 성차별적인 가사를 고치고 함께 불러보거나 미술 시간에 광고 속에 숨어 있는 성차별적인 내용을 찾아 광고로 다시 만들어 보면 학생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

특히 양성평등 의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양성평등 의식은 성차별로 인한 문제를 근원적으로 예방해 준다. 일회성 행사식 교육보다는 교과 학습 지도가 더 효과적이다. 모든 교과에서 성 관련 단원을 찾아 교수 학습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가정에서도 남아선호, 성별에 따른 역할 기대의 차이 등 성차별적 분위기가 없는 가족 문화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자가 공대에 가서 뭘 하느냐’ ‘남자가 무슨 조리학과냐’는 등의 편견을 버리고 자녀들에게 올바른 성역할을 제시해 줘야 한다. 부모의 성차별적 의식이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이런 편견을 가진 부모들이 많다.

청소년들은 신체적 성숙 못지 않게 정신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체험한다. 이들이 당황하지 않고 올바른 성역할을 인지해 미래 사회의 성숙한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려면 가정과 학교가 학생들의 욕구와 기대 수준에 맞는 적극적인 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학생들은 성차별에 대한 경험을 학교에서 가장 많이 느낀다고 한다.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교사들의 무의식적인 성차별적 발언과 행동이 학생들에게 피해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교사나 부모들이 자녀의 성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양성평등 의식을 앞서 실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 병 화(서울 구일고 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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