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낭비로 인한 파산자도 구제할 경우 파산제도를 악용하는 악의적인 채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법무부는 최근 마련한 ‘통합 도산법’ 시안(試案)에서 기존의 파산법(346조)에 들어 있던 ‘채무 면책 불허가 사유’에서 낭비 항목을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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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란 그 개념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없지만 법원은 현재 ‘채무자의 수입, 재산 상태에 비추어 사회통념을 벗어나는 소비 지출’을 낭비로 보고 있다. 채무자가 낭비한 것으로 인정되면 채무 면책을 허가해 주지 않는 게 법원의 관례.
법무부가 낭비 항목을 삭제하기로 한 것은 낭비의 개념이 모호한 데다 이 규정 때문에 면책 허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 현재 법원의 면책 불허 대상자 중 60%는 ‘낭비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파산자 가운데 면책 허가를 받는 비율이 매우 낮다”며 “빚에 허덕이는 파산자들이 회생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낭비 항목을 삭제키로 했다”고 말했다.
▽개인 파산(소비자 파산) 및 면책 제도〓파산이란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으로는 빚을 갚을 수 없어 법원의 도움을 받아 빚을 청산하는 것. 그러나 빚을 탕감받으려면 법원에서 면책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기존 파산법은 낭비 또는 도박 등 사행행위로 인한 빚이거나 10년 이내에 면책 허가를 받은 전력이 있을 경우, 재산 은닉 등 불순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경우엔 면책을 불허할 수 있다고 규정해 ‘낭비자’는 면책 허가를 받기가 어렵게 돼 있다.
한편 법원에서 파산을 선고받으면 금융기관 거래와 취직 등 일상생활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지만 면책을 허가받으면 불이익이 모두 사라진다.
▽외국의 사례〓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개인 파산자 가운데 면책 허가를 받는 사람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다. 우리나라는 연간 개인 파산 신청이 200여건에 불과하고 이 중 30∼50%만이 면책을 허가받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연간 17만여명인 파산자 가운데 면책을 허가받는 사람이 90% 이상이다.
▽낭비 조항 삭제 논란〓정부의 낭비 조항 삭제 방침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찬성하는 쪽이 많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소비자보호원 법령정비기획단 장수태(張壽泰) 부장은 “파산법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의 채무를 정리해 줌으로써 채무자에게 갱생(更生)의 기회를 주자는 것인 만큼 낭비 항목을 삭제해 면책 대상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지법 파산부에서 개인 파산을 담당하고 있는 윤강열(尹綱悅) 판사는 “낭비 항목이 빠지면 파산제도를 악용해 채무를 면탈받으려는 악의적인 채무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낭비 조항 삭제와 더불어 이에 대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