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30>서빙고망도성

  • 입력 2002년 11월 1일 18시 03분


‘서빙고에서 도성, 즉 서울을 바라보다’라는 제목의 진경산수화다.

서빙고는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199 서빙고초등학교 앞 길가에 있던 조선시대 얼음창고다. 성동구 옥수동에 또 다른 얼음창고가 있어 이를 동빙고라 했기 때문에 서쪽에 있는 얼음창고라는 의미로 서빙고라 했다.

조선왕조는 태조 3년(1394) 10월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왕실과 조정에서 사용할 얼음을 보관하는 일을 맡을 빙고(氷庫)를 예조(禮曹)의 부속기관으로 설치했다. 태조 5년의 일이다.

동빙고는 연산군이 사냥길에 방해가 된다 하여 서빙고 곁으로 옮기고 서빙고만 고종 31년(1894)까지 498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켰다. 이에 이 일대를 서빙고라 부르게 됐다.

그렇다면 어째서 겸재는 하필 ‘서빙고에서 도성을 바라보다’라는 제목으로 한양 서울의 전경을 그렸을까.

이 곳이 동작나루의 대안(對岸)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왕산과 남산 줄기가 흘러 내려와 마주친 곳에 세운 숭례문(崇禮門·남대문)으로 들어가는 길의 초입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 곳에서 시점을 하늘 높이 띄우면 도봉산과 삼각산을 조산(祖山)으로 하고 북악산을 현무, 낙산을 청룡, 인왕산을 백호, 목멱산을 주작으로 하는 분지형의 한양 서울 전경을 한 눈으로 잡아들일 수 있다.

동작동 서쪽 동작진 버드나무 숲 일부도 표현해 한강의 동작나루 양안 풍광을 아우르면서 둔지산 기슭의 서빙고 일대를 섬처럼 우뚝 솟구쳐놓는 것으로 근경을 삼았다. 지금 서빙고로와 동작대교가 교차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하는 용산시민공원 일대의 모습이다.

그림의 중심인 한양 서울은 북악산과 낙산, 인왕산, 목멱산의 능선을 따라 둘러진 석성(石城) 안에 수많은 민가들이 들어차 있어 도성으로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북악산 아래로는 경복궁의 폐허가 솔숲으로 가득 차 있고 인왕산 기슭에는 사직단(社稷壇)과 경희궁(慶熙宮·옛 경덕궁)이 솔숲에 쌓여있다. 남산 북쪽 응봉 기슭에는 창경궁 창덕궁 종묘의 모습이 보인다. 남대문을 비롯한 동대문과 서대문의 표현도 분명하고 북대문인 숙정문도 암문 형태로 부엉바위 근처에 표시돼 있다.

삼각산과 도봉산의 형태는 푸른 먹칠로 그 형태의 대강을 추상해내는 원산 표현기법으로 일관했다. 서울 장안의 모습을 이보다 더 정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는 없을 듯하다. 영조 24년(1744)경 비단에 엷게 채색한 크기 미상의 그림으로 일본인 소장.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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