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김현수(金賢洙·35)씨가 포항공대 생명과학과에서 ‘기초과학’을 공부하겠다고 나섰을 때 가장 걱정한 사람은 부인 민순선(閔順善·34)씨였다. 생활비도 문제지만 남편의 성격상 그 공부가 거의 구도 수준의 고생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석박사 통합과정 대학원에 ‘학생’으로 입학한 뒤 남편은 실험실에서 거의 매일 ‘날밤’을 새고 있다.
의과대학 졸업 때 김씨의 성적은 동기 140명중 13등. 이 가운데 생화학 같은 ‘기초’분야로 진출한 학생은 김씨를 포함해 2명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내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등 임상분야로 진출했다. 성적만 보면 김씨는 ‘좋은 대우’를 받는 의사의 길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김씨는 도전을 택했다.
“1년 동안 실험에 몰두해보니 스스로 엄청나게 성장하는 것을 느낍니다. 의과대학에서는 실험이 부족한데 여기서는 세계와 경쟁하면서 마음껏 실험할 수 있어요. 기초과학의 중요성이 피부에 와 닿습니다. 세포신호전달 분야는 한국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불쑥 획기적인 연구결과가 나올지 몰라 매일 조마조마 합니다.”
김씨는 학교에서 제공한 15평짜리 아파트에서 산다. 부인과 18개월 된 딸은 서울에 떨어져 있다. 실험실에서 매월 받는 생활비는 55만원선. 그것도 학교에서 주는 월급이 아니라 연구비를 쪼갠 ‘부정기적 수입’일 뿐이다. 김씨는 친구들이 “연봉 1억원을 받는다”고 말하면 부러움 보다 ‘기초과학의 열악한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김씨는 현재 세포를 구성하고 있는 무수한 물질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신호를 주고받는지를 밝히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김씨는 “경제적 이유로 기초과학에 적성이 맞는 의대생들까지 임상 쪽으로 내몰리는 것은 국가적으로 손해”라며 “의대생의 10%는 기초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만 노벨상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