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실종된 대학원 중심대학 정책

  • 입력 2002년 11월 12일 18시 32분


서울대 대학원이 개교 이후 처음으로 박사과정의 입학 정원을 감축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이 대학뿐만 아니라 국내 대학원 전반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반영하고 있다. 대학원 진학 희망자들이 대거 외국 대학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국내 대학원은 지원자가 날로 줄어들고 있다. 서울대의 이번 정원 감축은 계속되는 미달사태로 인한 불가피한 조치이며 이런 사정은 다른 대학들도 예외가 아니다.

선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4시간 불이 켜진 대학’은 이른바 연구중심 대학과 대학원 중심 대학을 말한다. 7년간 1조4000억원의 막대한 국가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정부의 BK21사업은 낙후된 우리 대학의 연구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한 긴급처방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돈을 쏟은 결과가 기껏 미달 사태라면 정부의 대학원 육성책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국내 대학원이 외면 받는 데는 현실적 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사회적으로 국내 박사보다 외국 박사학위를 선호하고 있고 박사학위 취득자 등 고학력 실업자들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들은 이를 탓하기에 앞서 국내 대학원 수준이 외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학생들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학생들로서는 비용을 더 들여서라도 외국 대학원을 가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다. 정부가 이 같은 취약한 연구시스템이나 문제점을 놔둔 채 연구비 지원만으로 대학원 중심 대학을 키우려고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국내 대학원의 위기는 단지 ‘그들만의 위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고급 인력이 다투어 외국 유학을 택하게 되면 외국 대학들은 앉아서 연구 경쟁력을 높이게 되는 반면 우리로선 그만큼 ‘두뇌 유출’의 결과가 된다. 국가 경쟁력에서 산학(産學) 협동은 필수이며 대학원의 위축은 국내 산업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대학원을 살리는 과제는 이제 ‘발등의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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