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에 빠졌던 ‘개구리소년들 사망사건’이 사실상 타살로 잠정 결론지어짐에 따라 사건당시 정황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법의학팀의 사인조사 결과를 토대로 살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본다. 개구리소년들이 어떻게 살해되었는지는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범행 상황〓91년 3월 26일 해질 무렵 대구 와룡산에서 도롱뇽 알을 주운 우철원군(당시 13세) 등 5명은 허기 속에 산을 헤매고 있었다. 철원군이 갑자기 쓰러졌다. 철원군의 머리에 생긴 ‘ㅁ’자 형태의 상처(가로 세로 2㎜ 크기)에서 피가 흘렀다. 법의학팀은 이 상처가 25군데나 발견된 점, 살아있는 상태에서 생긴 상처라는 점에서 사제 산탄 공기총에 맞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예리한 흉기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공포가 엄습했다. 소년들 중 발이 가장 빠른 김영규군(당시 11세)도 우측 옆머리 부근에 철원군과 같은 형태의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범인은 영규군의 상의를 끌어올려 양 소매와 하의를 묶었다. 일반인이 사용하지 않는 매듭이라고 법의학팀은 판단했다.
가장 나이 어린 김종식군(당시 9세)은 우측 눈과 귀 사이를 둔기로 구타당한 흔적이 발견됐다. 두개골이 10㎝가량 골절된 것. 둔기를 막을 때 생기는 골절이 종식군의 팔뼈에서 나타났다. 범인들은 나머지 어린이 2명을 목졸라 살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법의학팀은 밝혔다.
범인들은 숨진 소년들을 계곡에 매장했다. 시체가 놓인 모습이 자연사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 시체 위에는 가로 40㎝, 세로 47㎝, 두께 10㎝, 무게 24.4㎏짜리 돌이 얹어져 있었다. 같은 시간 동네에서는 소년들의 가족들이 애타게 아이들을 찾고 있었다.
▽의문점〓철원군의 두개골에 생긴 ‘ㅁ’자형 상처는 사제 산탄총에 사용되는 탄환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법의학팀은 추정했다. 반면 두개골에 생긴 구멍은 총상이 아니라고 밝혀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법의학팀은 또 범행수법을 볼 때 정신이상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경우 살해 동기가 불분명하다. 또 정신이상자 1명이 한꺼번에 다섯명의 소년들을 제압할 수 있느냐는 것도 의문. 범행 수법도 이해되지 않는다. 3명은 둔기와 흉기로, 2명은 목졸라 살해한 것은 통상적인 범죄유형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3의 장소에서 범행을 한 뒤 시체를 유기했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대구〓정용균기자 cavat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