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정부처럼 권한을 위임하려는 노력 없이 특정 분야를 이리저리 떼었다 붙이는 식의 틀에 박힌 정부 조직 개편은 부작용이 많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은 14일 서울대에서 ‘새 정부 조직 개편의 방향과 구도’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다.
진념(陳稔)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의 사회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는 김광웅(金光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주제발표를 했다. 또 학계와 관계 인사 외에도 대선(大選) ‘빅3 후보’진영의 핵심 참모들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 때문에 정부 주요 부처에서 나온 공무원들은 조직 개편에 대한 각 후보 진영의 생각을 알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주제 발표 내용〓김 교수는 주제 발표에서 “과거에는 관료들이 전문성 없는 명망가들을 꼭두각시 위원으로 앉혀 놓고 뒤에 숨어서 조직 개편을 좌지우지했다”며 지금까지의 정부조직개편 행태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다음은 김 교수의 발표 내용 요지.
각 부처의 기구, 인원, 예산은 천차만별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인원이 31만명이나 되는 데 비해 여성부는 120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모든 부처에 장관 1명, 차관 1명, 차관보 1명을 일률적으로 두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차관을 여러 명 둘 수 있게 하고, 국(局)도 부처의 크기나 특수성에 따라 늘릴 수 있게 해야 한다.
현재 정부 조직에서는 청와대나 몇몇 권력기관에 권한이 너무 집중돼 있으며 각 기관 안에서는 장(長)의 권한이 지나치게 크다. 대통령비서실부터 권한의 위임에 앞장서는 것이 개혁의 지름길이다. 대통령비서실은 내각이 하는 일에 간섭하는 역할을 그만두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데 힘을 써야 한다.
대통령비서실과 총리실의 관계도 다시 정립해야 한다. 대통령은 행정부 운영과 관련해 국무총리에게 어느 정도 권한을 줘서 맡겨야 한다.
굳이 정부 부처간 통폐합이 필요하다면 중앙정부로서의 위상이 너무 큰 행정자치부와 교육부를 개편해야 한다.
▽주요 토론 내용〓이한구(李漢久) 한나라당 의원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조직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운용이나 인사가 중요하다”며 “새 정부가 들어서면 초기에 기본틀을 만든 뒤 작은 부분은 그때그때 유연성을 발휘해 바꿔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전성철(全聖喆) 국민통합21 정책위 의장은 “현재의 정부 조직은 군사독재 시절 때나 걸맞던 조직”이라며 “우리 당이 집권하면 국가정보원과 교육부를 없애고 국세청도 중립성을 가진 조직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밝혔다.
이강래(李康來) 민주당 의원은 “누가 집권을 하든지 정부 조직 개편에 의욕을 보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부처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없애는 것도 어렵다”면서 “새 정부는 현 정부가 새로 만들거나 개편한 조직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를 우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정길(鄭正佶)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조직 개편이 잦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성격이 다른 부처를 묶어 놓으면 중장기적인 기능이 취약해지기 때문에 ‘건설교통부’식의 통합은 부작용이 많다”고 말했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