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고문방지대책]과감한 지원없인 공염불

  • 입력 2002년 11월 15일 18시 15분


법무부가 15일 발표한 고문수사 방지 대책은 피의자의 인권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검찰수사를 자백의존형에서 과학수사체제로 성공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과감한 인적 물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일부 사항은 법적 보완책이 필요한 데다 논란의 소지도 있다.

▽주요내용〓가장 눈에 띄는 것은 피의자 신문 과정에 변호인을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변호인 참여를 예외적으로 제한할 수 있지만 이때도 피의자가 접견을 원하면 언제든지 허용토록 했다. 또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진술거부권 고지문’을 신문 전 피의자에게 제시하고 수사기록에도 포함시켜 자백 강요를 원천 봉쇄한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검사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던 수사 관행에서 벗어나 과학수사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것도 중요 사항으로 꼽힌다. 이를 위해 신형 거짓말탐지기와 차량위치추적장치 등 첨단장비를 도입하고 공인회계사, 컴퓨터전문가 등 전문 수사인력을 채용해 관리한다는 것.

인권보호관과 인권감찰담당관 지정도 검찰의 강압수사 근절 의지로 해석된다.

▽문제점 및 보완대책〓법조계에서는 변호인의 신문 과정 참여는 피의자 인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시간이 곧 돈인 변호사들이 1명의 피의자만을 위해 하루종일 시간을 할애한다면 수임료 역시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 각종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는 고위공직자나 기업인 등의 경우 대형 로펌이나 고위 판검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수천만∼수억원의 수임료를 지불하고 자신을 ‘방어’하는 반면 서민들의 경우 거액의 수임료를 주고 자신을 밀착해서 ‘지켜줄’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울지검 특별조사실 폐지나 밤샘조사 및 단독조사 금지 등의 대책도 모두 예외 조항을 두고 있지만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피의자의 인권보장을 크게 강화한 데 따른 수사력 약화를 보완할 수 있는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검찰도 신문 과정에 변호인이 적극 참여하게 되면 신문을 통해 피의자의 거짓 주장을 밝혀내 증거로 삼는 기존 수사는 사실상 어렵게 되기 때문에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제3자인 참고인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핵심 참고인이 조사에 불응하면 법원에서 구인영장을 발부 받아 강제 조사하고 허위진술을 할 경우 처벌하는 등의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조계 반응〓변호사들은 숙원사업인 변호인 신문 참여권이 보장된 것에 대해 환영했지만 검찰은 당분간 수사력 약화를 막을 대책이 없어 ‘무장해제’를 당했다며 난감한 표정이다. 시민단체는 이번 대책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검의 한 간부는 “피의자 인권보호는 법무부 규칙 제정으로 당장 실행되지만 수사력 보강을 위한 조치는 법 개정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려 당분간 ‘맨몸으로’ 거악의 비리나 조직 또는 강력범죄와 싸워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전제일(全濟一) 간사는 “철야조사는 원래 불법이었고 강제구인제는 제3자에 대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이번 대책은 알맹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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