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동안 수집한 골동품 등을 한곳에 모아 개인 박물관인 ‘송광매(松光梅)기념관’을 세운 추언(秋堰) 권병탁(權丙卓·74·영남대명예교수) 옹.
대구 남구 대명동 주택가에 위치한 그의 보금자리(400평)안 마당에 지은 이 박물관에서 그는 평생의 동반자인 부인 송수희(宋壽熙·70)여사와 지내며 반갑게 내방객들을 맞는다.
94년 영남대 경제학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그는 이곳에서 박물관 운영과 전통 씨매실을 연구, 보급하고 책쓰는 일을 하며 ‘노년의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7개의 전시공간을 갖춘 박물관에 들어서면 8000여점의 소장품들이 눈앞을 가로 막는다.
제1전시실인 ‘매실방’에는 그가 20여년간 연구와 보급 운동을 병행하고 있는 ‘씨매실’에 관련된 자료들이, 제2전시실에는 서화류와 전통 염색 도구 등이, 3전시실에는 토기와 옹기류 청자 분청사기 등이 진열돼 있다.
특히 5, 6전시실에는 그가 전국을 돌며 수집한 집게 망치 잣대 등 유용한 쇠붙이를 만드는 장인들이 쓰던 철기류 등 생산도구와 생활자료 등이 체계적으로 보관돼 있다.
또 길쌈방(4전시실)에는 무명과 명주, 삼베를 짜는 물레와 베틀 등이, 7전시실인 약령시(藥令市)방에는 한약재 등에 관련된 유물들로 가득차 있다.
그는 원래 ‘오래된 것’들을 모으는 게 취미인데다 ‘쓸어내면 쓰레기요, 오래 간직하면 보물’이라는 신조를 갖고 있다.로 일단 무엇이든 집안에 들여 놓으면 쉽게 버리지 않은 생활습관 덕분에 이처럼 많은 소장품을 갖게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혼때 사용하던, 40여년 된 베개와 이불도 아직 장롱에 간직하고 있다”며 “멀쩡한 것도 ‘버리기’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들의 눈에는 나같은 사람은 구닥다리일 것”이라고 싱긋 웃었다. 그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매실’과의 인연.
80년 전남 승주군 송광사를 찾아간 그는 우연히 520여년된 매화나무밑에서 떨어진 씨앗을 주워 집으로 가져온 뒤 텃밭에 심어 싹을 틔워 키운 묘목을 달성군 화원읍의 산기슭으로 옮겨 심었던 것.
그는 “씨매실 종자가 내손에 들어 왔던 것은 어떤 계시가 있었던 것 같았다”면서 “50대에 접어들면서 체중이 늘고 혈압도 높아지는데다 잔기침이 자주나는 등 몸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으나 직접 수확한 매실로 차와 장아찌 등을 만들어 먹고난 뒤 몸의 이상증후가 사라지는 체험을 한 이후 매실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매실의 구연산성분이 인체에 흡수된 뒤 살균작용을 하고 체질을 약알카리 상태(PH7.4)로 유지시켜 주는‘크리브스 사이클’ 효과를 발표한 과학자인 크리브스가 이 연구를 통해 57년 노벨상을 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또 동의보감 등 동양의 고전의서를 통해서도 매실의 효능을 간접 확인했다는 것.
86년부터 씨매실 보급운동을 펴고 있는 그는 94년 팔공산 자락에 7000여평의 ‘송광설중매원’을 개원하고 달성군 화원읍 구라리에는 순종의 야생 씨매실을 보존하기 위해 ‘씨매실 씨받이밭’도 마련했다.
그는 “씨매실은 한반도에서 자라기 시작 한 지 수천년된 순야생 매실로 체질이 강인하고 주성분인 구연산의 함량이 개량형 매실에 비해 월등히 높다”면서“지금까지 씨매실 묘목 20만그루를 1만여명에게 보급했다”고 말했다.
대구〓정용균기자 cavat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