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피임약은 성폭력이나 근친상간, 피임 실패 등 원치 않는 임신이 우려될 경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약이다. 과거 속절없이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여성들이 이제는 낙태수술 없이도 성관계 후 72시간 내에 이 약만 두어 차례 복용하면 약 75%까지 임신을 예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응급피임약이 감기약이나 소화제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 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임신과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나 신성함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다. 특히 청소년들이 성관계 후 응급피임약을 먹으면 된다는 단순하고 얄팍한 생각으로 성생활이 문란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상당수 시민·종교 단체들도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는 것을 막는 것은 일종의 낙태행위’라며 이 약의 보급을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 여부는 문제점을 검토한 뒤 보다 신중하게 결정돼야 할 것이다.
최명연 대구 중구 남산동2가
▼藥 오·남용 막아 여성건강 보호를▼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화는 피임에 대한 여성의 부담을 늘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응급피임약을 약국 어디에서나 살 수 있게 된다면 여성들은 성 관계 후 남성들의 요구에 의해, 혹은 남성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의해 자의든 타의든 응급피임약에 의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약의 오남용 증가로 건강한 2세를 책임져야 할 여성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산부인과학회에서 보건복지부에 이 약의 명칭을 ‘사후피임약’이 아닌 ‘응급피임약’으로 부를 것을 요구한 것도 오남용을 미연에 방지해보자는 취지였다. 말 그대로 피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않은 실수 때 복용하는 피임약이라는 뜻에서 ‘응급’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약이 일반의약품이 된다면 ‘응급’이라는 개념은 ‘사후’라는 개념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때문에 적절한 방법으로 피임하는 일이 우선이다. 피치 못한 때에만 의사의 진단 하에 투약될 수 있도록 전문의약품으로 놓아두어야 한다고 본다.
차병헌 서울 구로구 구로6동·산부인과 의사
▼‘원치않는 임신’ 피할 권리 존중해야▼
응급피임약의 전문의약품 승인을 둘러싸고 나왔던 반대의견 중 대다수는 응급피임약의 시판으로 우리 사회의 성문화가 문란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응급피임약이 시판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응급피임약 때문에 사회가 문란해졌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한 사회의 성문화는 성문제를 둘러싼 사회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리고 그 사회 환경 중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바로 남녀평등 문제다. 왜 응급피임약을 둘러싼 논의의 한가운데에 여성이 서 있어야 하며, 임신에 의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가. 임신이 축복이 아닌 기피의 대상이 된 데에는 남성 위주의 성문화에 기인한 바가 크다. 원치 않는 임신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도록 성숙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이를 둘러싼 논란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막을 수 있는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은 일부 생각 있는 남성들 역시 크게 공감하는 사안일 것이다.
윤수진 경기 안양시 호계동
▼낙태 증가하는데 피임 규제해서야▼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이뤄지는 낙태 건수가 약 150만∼200만건으로 여성 인구가 6배나 많은 미국과 비슷하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매년 출생하는 아기의 2배에 해당한다는 비공식 통계를 접하게 되면 ‘피임’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거의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낙태에 대한 근본적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이같이 부끄러운 통계치를 놓고 ‘추락하는 성윤리’ 등 여러 사회적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막상 우리 사회는 응급피임약의 일반화에 대해서는 매우 도덕적이고 원론적인 측면에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원치 않는 임신이 낙태로 이어지는 불행한 일을 계속 방치하는 것은 더욱 문제가 있다. 현재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고 있는 응급피임약은 일반의약품으로 자유구입이 가능하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이와는 별도로 정부는 낙태문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병주 서울 송파구 장지동
■ ‘응급피임약, 전문의약품으로 남겨둬야 하나’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집계 결과 이에 대한 의견은 찬성과 반대가 정확히 50%씩으로 나뉘었습니다.
다음주 ‘독자토론마당’의 주제는 ‘경유 승용차 국내시판 허용해야 하나’입니다. 이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보내주십시오. 최근 자동차 업계와 산업자원부 등은 업계 보호와 유럽지역의 통상압력 등을 이유로 경유승용차 시판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환경부도 이를 위한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검토 중입니다. 반면 시민환경단체들은 이를 ‘대기오염 정책의 포기선언’이라며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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