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의 2003학년도 2학기 수시모집 결과를 보면 구술면접에서 당락이 바뀐 경우가 55.4%나 됐다. 절반이 넘는 수험생들이 구술 면접고사를 적합, 부적합의 판별 기능 정도로 얕잡아봤다가 큰코다친 셈이다. 2002학년도 대입에서도 구술면접에서 당락이 뒤바뀐 경우가 20~40%에 이르렀다.
그러나 상황이 이런데도 구술면접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몰라서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일단 면접의 형식조차 모르고 있으니 현장에 가서 당황할 수밖에 없다.
면접 고사장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수험생은 고사장으로 곧장 가지 않고 대기실에 입실, 본인 여부를 확인한 뒤 면접 번호표를 받는다. 최근에는 문제를 미리 주는 지필 구술고사 형식을 채택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는데, 자신이 뽑은 문제를 가지고 대기실에서 10분 정도 답안을 구상한 뒤 앞 수험생이 나오면 면접 고사장으로 들어간다.
면접관에게 면접 번호 및 문항 번호를 알리면 기본소양 평가와 전공적성 평가가 시작된다. 한 학생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길어야 15~30분. 서너 명의 면접관이 돌아가면서 질문을 한다. 면접은 기본적인 학과 적성과 개인 성향을 묻는 질문, 가치관·인성·논리성을 측정하는 질문, 전반적인 학문 영역의 쟁점과 시사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으로 이뤄진다. 이 정도는 알고 가야 한다.
2003학년도 대입에서 구술 면접고사를 실시하는 학교는 57개교. 빠듯하게 한 달 혹은 20여일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심층면접의 내용과 관련한 도움말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구술면접 카페 ‘우만구만’(상자기사 참조)을 이끌고 있는 박원우씨가, 답변 태도를 포함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전반에 대해서는 스피치 컨설턴트 이정숙씨(SMG 대표)가 맡았다.
▼시험에도 유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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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9일 서울대 2학기 수시모집 심층면접에서 나타난 특징은 영어, 국한문 혼용 제시문의 등장으로 꼽을 수 있다. 최근 대학마다 영어 지문 제시형 면접이 늘고 있는 데다 심지어 큰 소리로 읽고 해석을 요구하는 곳도 있어 “면접이 아니라 영어시험”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어쨌든 영어에다 한문까지 포함된 시험에 지레 겁을 먹고 우왕좌왕할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광양제철고 오송식 교사(국어)는 “수시모집 때는 영어 지문 등 자유로운 출제가 가능하지만 정시는 정형화된 문제가 나올 가능성이 높으며, 영어 제시문이 나오더라도 기초실력으로 충분히 독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구술면접은 영어 독해실력 측정이 아니라 글의 주제와 요점을 파악하는 기본 능력을 측정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박원우씨는 심층면접 초기인 2000년까지만 해도 학과별로 구체적인 질문이 많이 나왔지만, 모집단위 광역화가 이루어진 후 특정 학과에 집중된 질문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한다. 대신 단과대학별로 공동 출제하거나 아예 인문계 공통문제, 자연계 공통문제로 범위가 크게 넓어지면서 누구나 답변할 수 있는 일반적 주제를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과잉 준비로 힘 빼지 마라▼
심층면접 초기 풍경 가운데 치의예과에 지원할 학생들은 이 개수를 외우고 경제학과 지원자는 대학에서 배우는 ‘경제학원론’을 공부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학원들조차 구술시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명문대에 들어가려면 대학 교양과목 정도는 미리 공부해야 한다”며 대학별 교양과목 교과서를 공부하는 선행학습 열풍이 불었다. 시사적인 주제가 나온다니까 신문·잡지를 달달 외우는 무모한 시도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구술면접은 과목이 아니라 시험의 한 형식일 뿐이다. 특정 과목처럼 공부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불필요하다.
서강대 정유성 교수(교육학)는 “해를 거듭할수록 학원에서 배운 대로 천편일률적인 답변을 하는 수험생들이 늘고 있다”면서 “감점 요인은 아니더라도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려운 태도”라고 지적했다. 고려대 어윤대 교수(경영학)도 “특히 인문 사회계열의 질문은 정답이 없고 교수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어 틀에 박힌 대답은 오히려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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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면접을 하고 나온 수험생들의 반응은 “준비해도 소용 없고, 준비할 수도 없는 시험이다”는 것이다. 이런 수시모집 경험이 확산되면서 아예 준비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또 몇 차례 수시모집에서 쓰린 경험을 한 수험생들은 심층면접이 없는 대학을 골라서 지원하려 하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결과가 된다.
박원우씨가 ‘우만구만’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서울대 응시자들조차 불과 보름 정도 남겨놓은 시점에서 “어떤 문제가 나오나요?” “기출문제 답 좀 알려주세요”라는 기초적인 질문을 던지는 수준이라는 것. 지금 당장 준비에 들어가더라도 결코 남보다 준비기간이 짧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단, 대학별 기출문제의 정답을 찾느라 인터넷을 헤매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실제로 시중에 있는 구술면접 참고서들은 예상문제와 정답 중심이어서 기출문제 해설이 없다. 차라리 스스로 답을 적고 말로 옮겨보는 데 시간을 써라.
▼인문계·자연계 길이 다르다▼
최근 구술면접은 인문계와 자연계의 출제 경향이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한마디로 자연계는 종이 대신 칠판을 이용하는 변형된 지필고사 형태이고, 인문계는 계열별로 출제하다 보니 기본소양과 전공적성 평가의 차이가 거의 없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필고사라 해도 고등학교 수학·과학 교과서 내에서 출제되기 때문에 수능시험 공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문계, 자연계 공통으로 기본소양은 시사적인 것에서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학이 요구하는 것은 시사에 대해 얼마나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쟁점에 대해 토론하는 능력을 측정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정확한 근거 수치나 전문용어를 사용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어설픈 용어 나열보다는 자신의 분석과 주장을 뚜렷하게 하는 쪽이 유리하다. 주워들은 개념이나 용어를 나열하면 오히려 ‘뭘 제대로 알고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의심하는 면접관으로부터 집요한 추가 질문을 받게 된다.
전공적성으로 넘어가면 법대, 의대, 경영대의 경우 비교적 출제경향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법대의 경우 ‘집 앞 골목길의 눈을 치우지 않아 보행자가 미끄러져 넘어졌을 경우 집주인이 배상해야 하나’와 같이 보편적 법 원리를 적용하는 문제를 예상할 수 있고, 경영대라면 금리인상 효과와 같은 주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결국 교과서의 지식과 시사를 결합한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인문 사회의 경우 문제가 너무 막연하기 때문에 사회현상의 원인을 찾아내는 식의 독해력을 요구하는 문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문제 유형별 답변 태도▼
구술면접 문제는 크게 원인분석형 논제와 찬반양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찬반양론형에서 면접관은 수험생의 주장을 반박하고 추가 질문을 던지는 공격수 역할이고, 수험생은 방어 역할을 해야 한다. 만약 수험생이 도중에 입장을 바꾸면 곧 항복선언이나 마찬가지. 찬반양론형은 끝까지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인분석형(예를 들어 조폭영화 신드롬의 원인, ‘한류’의 원인)은 일단 자기주장을 밀어붙이다가 추가 질문 과정에서 허점이 드러나면 입장을 수정해도 괜찮다. 원인분석형 문제로 흔히 이슈가 되는 시사 문제가 많이 나오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Here and Now’ 전략. 박원우씨는 이슈를 분석할 때는 바로 지금, 한국이라는 땅에서 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모를 때의 전략. “처음부터 너무 솔직하게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지 말고 최소한 답변하려는 성의라도 보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지식을 묻는 전공 문제가 아닌 이상 안다, 모른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냥 모른다고 하면 면접이 끝나버린다. 어쨌든 답변을 하다 다소 논지에서 벗어나 헤맬 때는 면접관이 추가 질문을 통해 힌트를 주기도 한다. 끝내 모르면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고, 그 다음부터는 학교에 들어와서 열심히 배우겠다”는 애교로 마무리하면 된다.
▼기초 질문 소홀히 하면 낭패▼
‘심층 구술면접 족집게 특강 100선’에는 ‘언제나 물어보는 기본 질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놓았다. 지원동기, 입학 후 학업 방향이나 계획에 대한 질문, 졸업 후 진로와 장래희망, 학업계획서, 자기소개서 항목에 대한 질문, 감명 깊게 읽은 책·영화, 전공 관련 책과 인물에 대한 질문, 고교생활, 교우관계에 대한 질문, 자신의 성격이나 장단점, 자기소개, 가족소개, 학교소개, 시사 관련 질문 등.
서울대 주경철 교수(서양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입학시험 면접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질문이 “혹시 역사서 중에 읽은 책이 있습니까?”인데 학생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꼽는다는 것이다. 그외의 다른 책을 언급한 학생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이것은 틀에 박힌 대답이어서 신선하지 않을 뿐더러 과연 그 책이 모범답안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정숙씨는 ‘심층면접·집단토론 현장 합격 노하우56’에서 다음과 같은 노하우를 공개했다. 최소한 책 한 권은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여러 번 읽는다. 영화도 한 번만 볼 게 아니라 내용이 파악될 때까지 여러 번 보고 영화 대사나 책의 구절을 인용할 수 있도록 짧게 기록해 둔다. 책이나 영화에 대한 평론 등 여러 시각을 소화해서 정리한다.
▼면접은 50초 승부▼
“낯선 사람을 만나면 50초 안에 그 사람의 말을 얼마나 열심히 들어줄 것인가를 정한다.”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의 주장이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매킨지는 엘리베이터 면접으로 유명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대략 30초의 시간 동안 업무보고를 끝내고 상사로부터 OK 사인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대입 수험 면접에서도 초반 50초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닫고 인사하고 걸어 들어가 의자에 앉는 그 짧은 순간에도 면접관들은 수험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
이정숙씨는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는 버릇부터 고쳐야 한다. 의자 끝에 걸터앉으면 답변하는 자세까지 불안해지기 쉽다.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넣고 허리를 펴고 앉아 일단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고 나면 말이 쉽게 나온다”고 충고.
당당하게 걷고 상대의 눈을 보고 대화하며 적당한 말의 속도와 음량을 유지해야 좋은 첫인상을 남길 수 있다. 특히 말의 속도에서 세대차가 크다. 면접관의 평균 연령이 40대라고 보고 수험생은 그 기준에 맞게 조금 천천히 차분하게 말하되, 혀짧은 소리를 하지 않도록 하고, 문장의 끝을 분명하게 말하는 습관을 들인다. 면접관이 “전에 이 학교에 와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없는데요” 하기보다 “집이 멀리 떨어져 있어 며칠 전에야 처음 와봤습니다”라고 완성된 문장으로 이야기하는 편이 좋다. 적어도 면접관의 입에서 “알아듣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호감이 느껴지는 상대라면 답변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헤맬 때 약간의 힌트로 도와주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최근 구술면접에서 여학생 강세 현상이 두드러진 이유도 50초 승부에 강하기 때문. 밝은 표정과 또렷한 말씨로 자기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는 여학생들 때문에 “면접에 관한 한 남성 가산점제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친절과 냉소에 속지 마라▼
답변 도중 면접관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 뒤부터 떨려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수험생도 있다. 박원우씨는 교수들의 반응 유형을 다음 네 가지로 분류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친다, 잘 안 듣는 것처럼 딴청을 부린다, 코웃음을 치며 비웃는다(피식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짜증난다는 듯 인상을 쓴다. 어쨌든 교수의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 맞장구쳐 준다고 좋아할 것도, 무시당하는 것 같다고 기분 나빠할 필요도 없다. 그런 태도에 지레 주눅이 들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정숙씨는 집에서 ‘오냐 오냐’ 하며 기른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공격에 쉽게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방어인가 역전인가▼
내게 필요한 점수는 90점인가 50점인가. 수능과 내신성적이 불안한 상태에서 구술면접으로 대역전 드라마를 노리는가, 뒤집어지지 않을 정도의 방어가 목적인가. 전자라면 창의적인 답변을, 후자라면 상투적이더라도 평범한 답변을 준비하는 쪽이 좋다. 오히려 충분히 공부하고 준비한 학생들이 ‘창의성 콤플렉스’ 때문에 문제의 논지 자체를 엉뚱하게 해석해 감점을 받는 경우가 많다. ‘논지 이탈’은 최악의 점수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안전 위주냐 마지막 승부냐, 스스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출처: 주간동아 3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