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매체는 무소불위인가

  • 입력 2002년 12월 9일 18시 31분


대통령선거전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언론’을 표방하는 인터넷매체들이 기사 논평 해설 형태로 특정후보에 대해 노골적인 선거운동을 해 유권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현행법상 인터넷매체들은 단순한 ‘인터넷사이트’에 불과한데도 이들이 언론기관으로 행세하는 바람에 검찰과 경찰 선거관리위원회가 적극 단속에 나서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이들 인터넷매체는 선관위의 공정성 심의 대상도 아니어서 선거법의 ‘사각지대’에서 특정후보를 인신공격 또는 찬양하는 등 사실상 불법선거운동 무대로 변질되고 있다.

▽일부 인터넷 매체의 실상〓9일 현재 인터넷매체에는 특정후보를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글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매체 가운데 특히 정치색깔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곳은 20여개에 달한다.

본보 취재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A매체의 경우 선거운동이 시작된 11월27일부터 12월9일 오후까지 414건의 대선 관련 ‘보도’를 했으나 이 중 300건 이상이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정책을 지지하거나 인간성을 미화하는 글로 채워졌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대해서는 유세나 집회 현장을 다루는 ‘기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글이 ‘친미〓수구반동〓이회창’이라는 논지로 일관하고 있다.

B매체는 7일 ‘대선 중반 점검/이회창의 촛불시위 참석의 의미’라는 ‘기사’를 통해 “최악의 신경질적 발악… 알랑방귀 뀌는 작태…”라며 감정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C매체는 이날 7건의 대선 관련 메인 기사 중 7건 모두가 노 후보를 서민후보, 깨끗한 후보로 지칭했고 이 후보를 친미 후보, 부패 후보 등으로 묘사했다.

▽인터넷 매체의 법적 위치〓현재 정기간행물 등에 관한 법률 제16조에 따르면 인터넷매체들은 정기간행물이 아니며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관할하는 단순한 ‘인터넷사이트’에 불과하다. 일반 포털사이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셈.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경찰은 이들을 단속하는 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인터넷매체들은 ‘언론기관’임을 자칭하며 경찰수사에 불응하기도 했다. D사는 지난달 게시판에 특정후보를 비방한 글이 떠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언론탄압’이라며 수사협조를 거부해 실랑이를 벌였다. 경찰은 법원의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지난달 27일 D사의 서버를 압수해 게시자의 신원을 파악한 뒤 돌려주기도 했다.

▽속수무책인 당국〓중앙선관위의 안병도(安炳道) 공보과장은 “인터넷매체들이 선거방송이나 기사심의위원회의 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공정성을 따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한 선관위 관계자는 중견언론인 모임이 발행하는 관훈저널(2002년 여름호)에 기고한 글에서 “일부 인터넷신문은 특정 정당 및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며 “내용과 정확성에도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구로경찰서 박인구 사이버수사반장은 “인터넷매체들은 다른 언론에서 이미 보도된 내용을 교묘히 침소봉대해 확대 재생산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어 단속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 의견〓미디어전문가들은 ‘언론매체’임을 표방하지 않은 채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외국의 뉴스, 평론사이트들과 달리 ‘언론매체’임을 적극 주장하는 한국의 인터넷사이트들은 ‘여론 호도’방지를 위해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강미은(姜美恩) 교수는 “법적으로 인터넷매체들의 책임은 없지만 이들이 ‘매체’이기를 진정 원한다면 규범적으로라도 공정성 객관성 정확성에 걸맞은 보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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