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의 A국장은 최근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해달라는 전화를 받고 정중히 거절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말 동창회는 으레 참석했었지만 대통령선거가 있는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는 10일 “동창회에 나가면 친구들끼리 대선 결과를 놓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할 것이 뻔한데 내가 한 말이 정치권에 흘러들어가면 자칫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는 오해를 받지 않겠느냐”며 “구설수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자리는 아예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9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이 박빙의 접전으로 예상되면서 중앙부처를 중심으로 공무원들이 언행을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이다.
최근 공무원 사회의 분위기는 특정 대선후보에 줄을 대는 ‘모험’을 하기보다는 몸조심을 하면서 대선결과를 지켜보는 ‘안정’을 택하는 쪽이다.
특히 정년까지 임기가 보장된 2급 이하 공무원들 사이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조만간 국장급 인사를 앞두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국장급 B씨는 “이번처럼 대선 판세가 불분명할 때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한직에서 관망하는 것이 다음 인사에서 유리할 수도 있다”며 이번 인사 결과에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행자부 C국장의 경우 지난달 말부터 부하 직원들과 함께 어울리는 날을 제외하고는 퇴근하면 곧바로 집으로 간다. 그는 “대통령 선거 전까지는 친구들과 만나지 않기로 했다”며 “친구들도 내 입장을 이해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해 거의 모든 중앙부처들의 간부급 공무원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대선이 끝날 때까지 가급적 지방출장을 삼가고 있다.
한편 공무원들의 몸사리기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등 관공서 주변 고급 음식점들은 대선 특수는커녕 때아닌 ‘불황’에 울상을 짓고 있다.
세종로의 H한정식점 주인은 “대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달 말부터 단골 공무원 손님들이 급격히 줄었다”고 말했다.
이현두기자 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