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선거운동 실명제로 합시다"

  • 입력 2002년 12월 22일 18시 54분


제16대 대통령 선거는 끝났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새로운 ‘선거운동의 장’으로 떠오른 인터넷상의 각종 불법·탈법 행위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선거 감시체제는 대규모 군중유세가 이루어지던 과거식 선거문화에 적합한 것”이라며 “인터넷의 특징인 익명성과 신속성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로 시급히 변신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비방과 모욕의 한계〓인터넷 선거공방의 대부분은 ‘후보자 비방’. 그러나 ‘비방’의 수위를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서는 선관위나 검찰 경찰의 판단기준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후보자 비방죄로 사법처리하기 위해서는 특정후보를 당선시키거나 떨어뜨리기 위한 목적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어야 하지만 ‘비방’과 ‘모욕’ 혹은 ‘희화화’의 한계가 모호해 사법처리 결과도 일관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김모씨(26)의 경우 지난달 중순부터 보름간 인터넷 뉴스사이트 게시판에 ‘노무현 후보가 집권한다고 가정했을 때’란 제목으로 20여회의 글을 남겨 후보자 비방으로 구속됐다.

그러나 임모씨(43)의 경우 지난 6개월간 각종 언론사 홈페이지에 100여회에 걸쳐 ‘이회창 ×새끼’라는 표현을 담은 글을 올렸지만 불구속 처리됐다.

▽치고 빠지기에 속수무책〓인터넷 사이트 관리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 선관위와 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비방 또는 허위사실의 글을 발견할 경우 가장 먼저 사이트 운영자에게 게시글 삭제를 요청하지만 하루 수백건씩 발생하는 비방글에 대해 일일이 ‘정정’ 및 ‘삭제요청’을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 이 때문에 선관위는 하루 한번 정도 ‘삭제요청’을 하고 있지만 게시판에 뜬 흑색선전과 비방글은 순식간에 확산되기 일쑤다.

일부 문제성 비방글의 경우 길게는 10시간이 넘도록 게시판에 버젓이 자리 잡는 경우도 있었다.

▽익명 속에 가려진 불·탈법〓인터넷 게시판에는 익명으로 글이 올려지면서 비방과 흑색선전이 극대화되었다는 지적이다.

성균관대 정태명(鄭泰明·정보통신공학부) 교수는 “인터넷 가입자가 ‘가명’을 쓸 수 있도록 인정하고 있어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글이 난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선거뿐 아니라 허위사실 유포, 개인의 명예훼손을 막기 위해서라도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하지만 부작용과 역기능이 노출된 이상 실명제 또는 이용자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IP(인터넷주소) 등록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일부 ‘인터넷 보도매체’에 대해서도 언론이 갖는 책임과 의무가 함께 부과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한 이른바 ‘사이버 선거사범’이 전체(1426명)의 54.5%를 차지해 선거사상 처음으로 ‘오프라인(off-line)’ 선거사범보다 많아지는 역전현상이 벌어졌다. 경찰은 또 22일까지 비방과 흑색선전 등 500여건의 인터넷 선거사범을 수사 또는 내사 중이어서 수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중앙선관위 사이버 전담반은 이날까지 모두 1만700여건의 게시글을 삭제하고 58건을 수사의뢰 또는 경고 조치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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