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만평의 간월호 시발점인 이곳은 작년만 해도 노랑부리저어새 등 철새 수만마리가 월동을 위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이날은 4분의 1 정도로 수가 줄어든 철새들 사이에 노랑부리저어새는 20여마리만 눈에 띄었다.
잠시 후 흙먼지를 일으키며 관광버스들이 질주해왔다. ‘천수만 철새기행전’이라는 현수막을 붙인 버스에서 관광객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나마 남아있던 철새들은 혼비백산하듯 시야에서 사라졌다.
충남 서산시가 주최하는 ‘2002 서산천수만 철새기행전’이 국내 최대 철새 월동지인 천수만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1월1일 개막돼 연말까지 열리는 이 행사는 ‘새와 인간의 만남’이라는 취지로 서산시가 2억5000만원을 들여 마련한 것. 지금까지 6만여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간 것으로 서산시는 추산했다.
그러나 50여일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조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또 다른 죄악”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2002 서산 천수만 철새기행전’에 참가하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이 22일 간월호변에서 망원경 등으로 철새를 관찰하고 있다.서산〓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
탐조(探鳥)는 관광객들을 버스에 태워 안내원과 함께 1시간반 동안 간월호 둘레를 돌며 탐조대 3곳에서 새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어른의 경우 1인당 3000원, 외지버스는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오후 2시반경. 경기도에서 온 한 관광버스가 간월호 서단 중간에 설치된 탐조대에 도착했다. 뛰어내린 학생들은 호기심에 호수 안으로 돌멩이를 던졌다. 잠시 후 또 다른 탐조버스가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철새는 모두 날아가 버린 상태. 관광객 안모씨(31·서울 관악구 신림동)는 “새는 없고 사람들만 북적거린다”며 허탈해했다.
간월호 동쪽 와룡천에는 그 많던 기러기떼조차 자취를 감춘 상태. 모래섬 위에 있는 흰꼬리독수리 2마리 정도가 눈에 띌 뿐이었다. 이마저도 관광버스의 엔진소리에 놀라 또 다시 사라졌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세계적 희귀조인 황새와 천연기념물인 큰고니 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황새는 매년 5마리, 노랑부리저어새는 77마리가 이곳에서 월동해왔다.
천수만습지연구센터 한종현(韓宗鉉·43) 사무국장은 “월동지를 정하면 쉽게 옮기지 않는 흑두루미마저 몇주째 관측되지 않고 있다”며 “예년의 경우 전체 개체가 20만마리 정도 월동했으나 올해에는 5만마리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천수만 철새 축제 추진위원회의 이평주(李平柱·41)씨는 “철새가 줄어든 것은 꼭 축제 때문만은 아니다. 기후변화 등에도 원인이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올해 처음으로 볏짚 태우기를 중단하고 곡식 남겨두기 운동을 펼쳐 철새들의 서식환경이 크게 좋아졌던 점을 감안하면 요란한 축제가 개체 수 감소의 큰 이유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경희대 자연사박물관장 윤무부(尹茂夫·60·생물학과) 교수는 “새는 매우 민감한 동물로 관광버스 유리에서 반사되는 빛, 디젤엔진소리 등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며 “세계적으로 야생동물을 대상으로 한 ‘축제’는 본 일이 없다”고 지적했다. 서산시는 이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을 계속 유치할 방침이다.서산〓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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