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정부 초반에 검찰이 특별검사제의 대안으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 방안을 제시한 일이 있다. 하지만 당시 여야의 정파적 이해 관계와 검찰 내부의 의견이 엇갈려 성사되지 못했다.
당시 여야 모두 이 기구의 설치에 원칙적으로는 동의했지만 기구의 성격상 정치인과 정치 자금이 수사 표적이 될 수밖에 없어 정치권의 동의를 끌어내기 어려웠던 것. 16대 대선 이전까지 민주당은 물론, 야당인 한나라당마저 이 문제에 의욕을 보이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법무부와 검찰의 속사정은 얽힌 실타래처럼 더욱 복잡하다. 우선 검찰만이 소추 여부를 결정하는 기소독점주의의 근간을 바꾸지 않는 한 수사권을 갖는 독립 기구 발족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검찰의 반론이다.
지금까지 검찰은 편파 수사 시비와 특검제 주장이 나올 때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해 왔다.
2001년 검찰총장으로부터 인사와 수사권을 독립시킨 ‘특별수사검찰청’이나 99년 검찰청에서 인사와 예산을 분리시킨 ‘공직비리수사처’ 신설 방안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물론 이런 계획들은 ‘옷로비 의혹사건’ ‘이용호(李容湖)게이트’ 등에 대한 특검제가 실시되면서 흐지부지됐다.
검찰은 공직자를 겨냥한 별도의 수사기관이라도 현직 검사장이 수장(首長)이 되는 기구를 내심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노 당선자가 구상하는 권력형비리 조사처의 신설도 검찰의 반발 등 몇 가지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는 한 쉽게 관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검찰 관계자들은 당장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수사권을 지닌 권력형비리 조사처가 설치될 것이라는 일부 보도에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부방위가 고위 공직자 수사를 맡아온 대검 중앙수사부의 기능을 흡수하겠다는 것이냐”며 “그러자면 검찰청법과 부패방지법을 고쳐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인가”라고 되물었다.
결국 권력형비리 조사처는 인수위 내의 논의, 검찰 및 정치권 의견수렴 등을 거치면서 사정기관의 기능 및 형사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 밑그림이 먼저 그려져야 그 위상과 설치 여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결론이 내려질 수 있을 전망이다.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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