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마당 쓸기부터 시작해 열심히 스님의 시중을 들면서 면접에 통과한 합격생 기분으로 입산 사흘째까지를 무사히 넘겼다. 그러나 스님은 그날 저녁 나를 앞에 앉히고 간곡히 설득하기 시작하셨다. 그새 얼마를 지켜보니 내 행실이 도저히 산사생활에는 맞지 않고, 나 같은 어린 학생들을 여럿 겪었지만 모두들 며칠 넘기지 못하고 떠났다며 귀가를 권유하셨다. 묵묵부답으로 나의 굳은 의지를 나타내려 했지만 스님의 설득은 그칠 줄 몰랐다. 그토록 뜻이 간절하거든 대학을 마친 뒤에도 늦지 않으니 그때 다시 찾아오라는 당부까지 곁들였다.
어쩔 수 없이 밤새 쏟아진 장대비가 그치길 기다렸다가 다음날 아침 느지막이 스님과 보살 등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산사를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참담했던 심경은 밤새 쏟아진 비로 넘칠 듯 불어난 계곡물의 광경과 함께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선연하다.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스님과 한동안 편지 왕래가 있었다. 스님께서는 매번 깨알같은 글씨로 철없이 몽매한 내 정신세계를 일깨워주셨다. 언제부턴가 내 게으름 탓에 서신 왕래가 끊어졌고, 오래 전 그 절의 다른 스님으로부터 스님께서 지병으로 타계하셨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지금도 가끔 스님께서 그때 어린 나의 뜻을 받아주셨다면 오늘쯤 내가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지건길 국립중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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