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폭탄冊 소포’ 용의자 검거…불탄 책 적외선 촬영 단서 포착

  • 입력 2003년 1월 16일 22시 54분


40여일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며 서울 도심의 극장 등에 7차례나 폭발물 협박을 해온 용의자가 16일 검거됐다. 용의자는 인터넷 물품판매를 하다 카드빚 등 8000여만원의 빚을 진 20대로 밝혀졌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CJ엔터테인먼트 소속 극장에 대한 폭발물 협박범으로 박모씨(29·사진)를 이날 긴급체포했다.

▽검거과정=경찰의 검거는 쫓고 쫓기는 첩보영화 같았다. 전화추적을 교묘히 피하며 신출귀몰하던 용의자가 남긴 유일무이한 단서는 CJ엔터테인먼트 대표에게 우송했던 책자형 폭발물. 경찰은 불타버린 책에 주목했다. 적외선촬영기법으로 정밀히 조사한 결과 스탬프로 책 상단에 ‘홍○○’라는 이름이 희미하게 찍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전국의 동명이인은 모두 190명. 경찰은 이들을 주소지로 찾아가 확인하는 ‘발품’을 팔았다.

이달 13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S빌라에 사는 ‘홍○○’씨를 찾았을 때 홍씨는 이미 이사가고 없는 상태. “헛걸음쳤다”고 생각한 경찰에게 이 빌라 경비원은 이상한 이야기를 꺼냈다. “책 소유자가 이사하면서 두고 간 책을 이웃에 사는 박씨가 가져간 것 같다. 최근에는 3, 4차례 빌라 지하실에서 ‘펑’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

경찰은 박씨가 지하실에서 폭발실험을 했을 것이라고 판단, 협박범의 목소리를 경비원에게 들려주었다. 경비원은 “흡사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경찰이 박씨의 빌라를 급습했으나 박씨는 종적을 감춘 뒤였다. 경찰추적을 직감한 박씨가 휴대전화를 꺼 위치추적을 피하면서 근처 고시원에 숨어든 것.

경찰은 다시 인근 PC방과 찜질방 고시원 등을 샅샅이 뒤지며 탐문수사를 펼쳤고 16일 고시원에 숨어 있던 박씨를 전격 검거했다.

▽범행동기와 수법=용의자 박씨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S빌라 지하실에서 인터넷으로 물품을 판매하다가 카드빚 6000만원, 사채빚 2000만원 등 총 8000만원의 빚을 지자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목표는 어이없게도 원한관계가 전혀 없는 CJ엔터테인먼트와 소속극장인 CGV.

박씨는 “CJ엔터테인먼트가 극장 점유율 1위라는 보도를 보고 돈이 많을 것 같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공업고교 전기과를 졸업한 뒤 통신병으로 군대생활을 한 박씨는 전기에 관심이 많아 쉽게 폭발물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해 12월5일 오전 9시50분경 서울 중구 남대문로 CGV본사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며 협박해 2000만원을 요구하는 등 7차례에 걸쳐 협박전화를 걸었다. 같은 달 27일 CJ엔터테인먼트 이모 대표이사 부사장(50)에게 책자형 사제 폭발물을 우편으로 보내 얼굴과 손에 화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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