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치는 차기 정부가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바로미터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현재 환경단체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는 다른 대형 국책사업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또 국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민자유치로 추진해온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짐에 따라 정부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게 됐다.
▽왜 백지화됐나=사업타당성 평가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사업 추진방식을 8가지로 나누어 한 경우만 빼고는 ‘비용 대비 편익’이 1.0077∼1.2807로 사업타당성 평가기준(1.0000)을 넘는다고 보고했다.
인수위는 이에 대해 비용을 줄이고 편익을 과다하게 적용해 형평성이 없고, 일부는 편익을 높이기 위해 사업을 연기하는 편법을 썼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당초 계획된 사업안의 분석 결과만 인정할 수 있다며 이 경우 ‘비용 대비 편익’이 0.9223으로 나온 만큼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여기에는 경제성 평가 결과가 왜곡됐다는 시민단체의 주장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8월까지 0.8 수준이던 KDI의 경제성 평가가 막판에 건설교통부의 요구로 바뀌었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KDI나 건교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해왔다.
노 당선자가 재검토나 백지화를 공약한 대형 국책사업 가운데 경인운하가 사업 백지화에 따른 문제가 가장 적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노 당선자의 공약에는 경인운하 외에도 △경부고속철도의 천성산, 금정산 관통사업 △한탄강댐 건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의 북한산 국립공원 관통터널 등이 재검토나 백지화 대상으로 포함돼 있다. 경인운하 사업은 홍수방지를 위해 굴포천에 임시 방수로를 뚫은 것 외에는 진행된 것이 없는 반면 다른 사업들은 대부분 착공을 눈앞에 뒀거나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이다.
▽미치는 파장=정책 신뢰도 추락이 큰 문제다. 정부가 수립한 계획과 정부가 인정한 환경영향평가 및 사업타당성 평가를 정부 스스로 부인한 결과가 됐기 때문이다.
예정에 없던 국고 부담도 생겼다. 경인운하사업과 함께 묶어 민자유치로 추진돼온 굴포천 방수로 건설사업이 정부사업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대건설 등 9개사 컨소시엄인 ‘경인운하 주식회사’에 굴포천 방수로 사업비 1400여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새만금건설사업, 한탄강댐 건설사업 등 환경단체가 백지화나 재검토를 요구해온 사업도 이번 조치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또 인수위가 24일 경인운하 백지화 방침을 결정하면서 정부 당국자들을 완전히 배제한 채 시민단체에 먼저 통보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시민단체 반응=‘경인운하 건설사업 백지화를 위한 수도권 시민공대위’는 이날 “인수위의 경인운하 사업 백지화를 환영한다”며 “노무현 정부가 21세기 친환경 정부로 가려는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의미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민단체들은 또 “이번 백지화 결정은 경인운하와 같은 개발사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제 개발시대의 낡은 패러다임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정의시민연대 박용신(朴勇信) 정책기획팀 국장은 “전략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해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해서는 실시 단계가 아니라 기본계획 수립단계에서 환경에 미치는 중장기적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인운하 시나리오별 경제성 평가 | |||
구분 | 시나리오 | 건설방식 | |
최초 설계 | 단계별 건설 | ||
신규 운하 건설 | Ⅰ | 0.9223 | 1.0077 |
Ⅱ | 1.0545 | 1.1264 | |
방수로 전제로 운하 건설 | Ⅲ | 1.0363 | 1.1830 |
Ⅳ | 1.1536 | 1.2807 | |
경제성 평가가 1보다 작으면 사업타당성이 없다는 뜻. 자료:한국개발연구원(KDI) |
▼경인운하사업 추진일정▼
·1988년
굴포천 종합치수대책 조사
·1989년
경인운하 계획 예비조사
·1992년12월
굴포천 종합치수사업 실시계획
승인 및 착공
·1995년 3월
경인운하 민자유치대상사업으로
지정
·1998년 3월
경인운하㈜를 사업자로 선정
·2000년 6월
경인운하사업 환경영향평가 협의
·2001년 8월
굴포천 임시방수로 사업 착공
·2002년 4월∼
KDI, 경인운하 사업타당성
재평가
·2002년 6월
굴포천 임시방수로 개통
·2003년 1월23일
경인운하 백지화 방침 발표
정성희기자 shchung@donga.com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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