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하는 거야. 하루종일 나만 괴롭히는 이유가 뭐야.”(그는 이날 아침 같은 자리에서 불법 주차로 차를 견인당했다고 한다.)
“선생님 사정은 알겠지만 이곳에 차를 대는 건 불법입니다. 아시잖아요.”
“알아 알아. 불법인 거 누가 몰라? 근데 대한민국 다녀봐, 누가 법을 그렇게 잘 지킨다고, ××. 왜 나만 단속하는 거야.”
그는 스티커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지금 서울에선 ‘불법 주차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시가 20일부터 ‘불법주차 근절을 위한 강력 기획 단속’에 돌입한 것이다. 2월 9일까지 시범 단속을 하고 이후 본격 단속에 들어간다.
“대중교통 중심으로 교통시스템을 바꾸고 인도를 보행자에게 돌려주기 위해선 주요 간선도로 혼잡지역에서 불법 주차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것이 서울시의 각오다. 시범 단속에선 하루에 간선도로 한 곳을 정해 5개조(4인 1조)가 6시간씩 단속한다.
이번 단속은 그동안의 관행과 달리 강력하고 집요하다. 20일 첫날 종로 4, 5가∼대학로∼미아로 구간에서 698장의 과태료 스티커를 발부했다. 평소 서울 전역에서 발부되는 스티커와 맞먹는 수다. 시범 단속 기간 중 하루 평균 스티커 발부는 400여건이고 계도는 700여건.
그렇다 보니 곳곳에서 마찰이 발생한다. 24일 낮 12시반 강북구 수유동의 수유플라자 앞 도봉로. 인도는 불법 주차 차량으로 가득했다. 한 승합차에 스티커를 발부하자 50대 남자 운전자가 노발대발이다.
“잠깐 주차한 거란 말야. 이 시간에 무슨 스티커야. 당신들은 밥도 안 먹나.”
“차를 빼라고 몇 차례 방송을 했는데요.”
“못 들었는데 좀 봐 주쇼.”
“안됩니다.”
“안돼? 시청으로 갑시다. 사형수도 밥 먹여주는 세상에 내가 먹고살겠다고 차를 댄 건데… 서울시장이 그렇게 교육시켰어? 시장 전화번호 대.”
단속에 걸린 사람들은 대개 억울하다고 한다. “방금 주차했는데…”, “왜 나만…”, “주차장이 없는데 어떡하란 말이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그들의 항변 속에 감춰진 것은 다름 아닌 ‘불법에 익숙한 일그러진 교통문화’다. 불법 주차 차량이 사람을 몰아내고 인도를 점령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한 건축가는 “그건 인간에 대한 폭력”이라고 말했다.
23일 오후 5시 성북구 돈암동 미아로. 한 운전자가 버스전용차로에 학원버스를 불법 주차한 채 세차를 하고 있었다. 여성 단속원이 다가가자 그는 대뜸 욕설부터 퍼부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불법 주차 단속원으로 나왔던 심은하의 상쾌한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서울의 현실에서 여성 단속원이 과연 그렇게 상쾌하게 웃을 수 있을까.
시는 2월 10일부터 대상지역을 11개 간선도로로 늘려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반까지 본격 단속에 들어간다. 단속기간은 불법 주차가 사라질 때까지 무기한.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