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5억 北송금,“거짓말 하는게 통치행위인가”

  • 입력 2003년 2월 2일 19시 01분


설 민심은 ‘거짓말 정권’에 대한 분노와 허탈감으로 압축됐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대북 지원용으로 2235억원을 지급한 사실을 시인하자 시민들은 “처음에는 터무니없다며 부인하더니 결국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설을 맞아 가족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사법처리는 부적절하다’는 김 대통령의 발언은 비난의 표적이 됐다.

일부 인사들은 “통치행위라며 합리화하는 주장은 제왕적 봉건군주적 발상”이라며 “비밀리에 거액을 북한에 건넨 사건은 통치행위라기보다는 이적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소설가 박완서(朴婉緖·72)씨는 “설마 했던 것들이 항상 사실로 들통 나는 정치판에 넌덜머리가 난다”며 “대통령이 그런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박홍원(朴鴻遠) 교수는 “(사실을 숨긴 것은) 통치행위를 명분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억압한 행위”라며 “거짓말로 일관해오다 뒤늦게 시인한 점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밖에 “경제가 어려워 실업자가 급증하는 판에 정부가 2000억원이 넘는 돈을 주인인 국민 몰래 사용해도 되나”(회사원 계명국씨·29), “한푼도 뒷거래를 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더니 이제 와서 ‘통치행위’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얕보는 것”(장우승·張又升 변호사)이라는 비난여론이 쏟아졌다.

사실과 책임을 규명해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화여대 행정학과 김석준(金錫俊) 교수는 “통치행위란 법 테두리 안에서, 도덕적 바탕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정략적 계산으로 국민을 속인 행위는 당연히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건 참모건 여당이건 돈을 주고 (북한과) 뒷거래를 한 것은 철저히 책임을 따져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강영식(康英植) 사무국장도 “민간단체가 인도적 차원에서 하는 대북 지원사업도 까다로운 감시와 확인 절차를 밟는다”며 “하물며 어디에 쓰일지도 모르는 엄청난 돈을 국민 모르게 지원한 것은 문제”라며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정모씨는 “현대상선이 2000억원이 넘는 돈을 당국에 신고도 안 하고 송금했다면 당연히 외화 밀반출로 처벌해야 한다”며 “액수가 크면 클수록 ‘떡값’ ‘통치행위’라는 미명으로 덮이고, 고위층은 온갖 거짓말을 해도 문제되지 않는 나라가 어떻게 세계적인 나라가 될 수 있겠느냐”고 허탈해했다.

분노한 민심은 설 연휴를 맞아 온가족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더욱 뜨겁게 분출했다.

부산 남구에 사는 손기홍씨(65)는 “친인척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도 대통령이 국민을 속인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며 “노벨상 받으려고 김정일에게 국민의 돈까지 줘가며 정상회담을 거래한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고향인 광주를 다녀온 대학원생 이두현(李斗炫·27)씨는 “호남지역에서도 DJ의 실책이었다는 여론이 더 많았다”며 “특히 ‘국민 몰래’ 투명하지 못한 정책을 집행한 데 대한 배신감이 심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