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를 나눠 좌측에는 ‘경제적 발전’, 우측에는 ‘분배의 균형’을 표현하시오.”
“어항이 깨졌다. 물고기를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표현하시오.” (올해 한 대학 디자인계열 입학 실기시험)
이제 미대 입시하면 석고 데생이나 수채화 등을 떠올리던 시절은 갔다. 많은 대학이 학생들의 기능보다 창의력을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1997년 개원하면서 기존 방식을 벗어나 수험장에 염소를 직접 끌고 와 그리도록 하거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체를 참조해 존재하지 않는 생물체를 창작하게 하는 실험적인 입시를 시도했다.
서울대 미대도 5년 전부터 ‘50대 초반 한국인의 삶에 지친 모습을 그려 보라’든지 ‘나는 30대의 프로그래머다. 어느 날부터 내 얼굴에서 손가락이 자라기 시작했다’는 문장을 주고 그림으로 표현하게 하는 방식의 실기를 치르고 있다.
권영걸 부학장은 “데생력이나 표현력은 입학 뒤에도 개발할 수 있지만 창의력은 그렇지 않아 사고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를 가장 많이 본다”고 말했다.
2001학년도부터 기상천외한 문제들을 출제해온 국민대 조형대는 올해도 같은 방법으로 신입생 180명을 선발했다. 올해에는 사각의 철제물을 예로 주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표현하도록 하는 등의 문제를 냈다.
또 이화여대 건국대를 비롯한 서울 소재 미술대학 15곳이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디자인과뿐만 아니라 회화 조각 등 순수미술 분야에서도 학생의 철학과 개념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다.
한편 홍익대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두식 학장은 “정물이나 석고상 묘사를 통해서도 창의력을 시험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변별력이 있는 문제 개발이 어렵고 자칫 입시부정의 소지도 우려돼 기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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