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터의 재앙? …부품 호환안돼 年100만대이상 쓰레기로

  • 입력 2003년 2월 5일 18시 54분


A사의 잉크젯 프린터를 사용해온 이모씨(55·회사원)는 지난달 정품 카트리지를 다 쓴 후 가격이 저렴한 타사의 리필(재충전) 잉크를 채워 넣었다가 카트리지를 망가뜨렸다. A사가 다른 리필 잉크제품을 사용할 경우 카트리지의 잉크 분사구가 막히도록 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카트리지 가격이 비싼 만큼 리필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어야 하는데 A사는 왜 이를 못하게 해 놓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보급량이 1300만대에 이르는 컴퓨터 프린터 대부분이 재활용하기 어렵게 제작돼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휴렛팩커드(HP), 엡손, 캐논, 신도리코, 삼성 등 거의 모든 대형 프린터업체들이 자사의 카트리지를 판매하기 위해 리필 방지 전자장치(ARD·Anti-Recycle Device)를 장착해 놓고 있다.

이들 업체는 또 잉크젯프린터의 경우 10만원대에 판매하면서 잉크 카트리지는 3만∼5만원에 판매, 카트리지를 교환하기보다 프린터를 바꾸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버려지는 프린터가 갈수록 늘고 있는 실정.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 협의회’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프린터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2002년 누적 보급량이 1300만대를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른 폐프린터 잠재배출량도 연간 100만대를 넘어선다는 것. 또 프린터 소모품인 잉크 및 토너 카트리지의 경우 현재 사용량이 연간 1800만개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프린터의 인쇄회로기판에 중금속이 함유돼 있고, 카트리지의 잉크에도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는 점. 프린터의 인쇄회로기판에는 대당 약 6g의 납을 비롯해 카드뮴 등의 중금속이 함유되어 있으며, 카트리지에 붙어 있는 잉크와 카본블랙에는 발암물질이 함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생산자 재활용제도’의 대상 품목에 컴퓨터 주변기기인 프린터와 카트리지가 빠져 있는 것도 문제점. ‘생산자 재활용제도’는 생산자가 자신이 만든 제품을 재활용하는 의무를 지도록 한 것. 결국 생산자가 외면하는 사이 폐프린터와 폐카트리지는 대부분 가정에 방치되거나 폐기물로 소각 혹은 매립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유럽의회는 지난해 말 다른 부품과 호환이 안되거나 재활용이 불가능한 프린터의 생산을 2006년부터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선진국들은 이미 프린터와 카트리지 재활용을 ‘기본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한국 HP측은 관련제품이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토너 카트리지를 수거하고 있다”며 “잉크 카트리지는 처리 방안을 마련하는 대로 미국이나 유럽처럼 수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카트리지=프린터 안에 잉크나 토너를 담고 있는 통으로 이에 달린 노즐을 통해 인쇄가 된다. 잉크젯프린터 카트리지에는 잉크가, 레이저프린터에는 토너가 들어 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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