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6일 오후 4시20분경 서울지하철 2호선 시청역 유실물센터. 30대 회사원 한모씨가 황급히 들어섰다.
“지금 막 가방을 놓고 내렸는데요. 어휴, 전세계약서가 들어있는데.”
“방금 통과했으니 열차번호는 2336이고, 몇 번째 칸이었죠?”
“맨 뒤칸인데요.”
“오른쪽 선반이었나요, 왼쪽 선반이었나요?”
“오른쪽이요.”
“열차는 지금 신촌을 지났고 신도림으로 연락해보죠. (전화 연락) 오후 4시34분에 신도림에 도착할 테니 좀 있으면 그쪽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전세계약서를 찾지 못했다. 신도림역에 도착하기 전에 가방이 사라진 것이다.
역무원이나 승객들이 발견한 분실물은 서울역 구로역(이상 1호선) 시청역(2호선) 충무로역(3, 4호선) 왕십리역(5호선) 태릉입구역(7호선) 등 6곳의 유실물센터에 접수된다. 한 곳 당 하루 평균 40여건이 접수되고 이 가운데 주인을 찾는 것은 30%가량.
서울지하철공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오늘의 분실물 베스트 5’를 보면 가방 배낭 쇼핑백 지갑 휴대전화 순이다.
기상천외의 분실물도 들어온다. 왕십리역의 황은아(黃銀兒)씨는 “틀니가 2개 보관돼 있는데, 어떻게 틀니를 잃어버렸는지”라면서 의아해했다. 보청기, 자전거, 대학생 리포트, 도서관에서 빌린 책, 옛 소련제 카메라, 외국인 여권 등도 있고 가끔 수백만원이 든 가방도 들어온다. 분실물로 가장해 지하철에 쓰레기를 버리는 얌체족도 있다.
분실물이 가장 많을 때는 봄철. 나들이에 나섰다가 돗자리나 여행가방을 놓고 내리는 경우가 특히 많다. 음식물은 쉽게 상하기 때문에 하루나 이틀 보관하다 버린다.
서울역 관계자는 “같은 물건을 두세번 잃어버리는 사람, 분실물을 찾으러 왔다가 다른 물건을 놓고 가는 사람 등 분실을 밥먹듯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연락을 받고 찾아가지 않는 사람도 많다. 유실물센터는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귀금속 지갑 현금 휴대전화 등은 2주정도 보관한 뒤 경찰에 넘긴다. 나머지는 1년 정도 보관한 뒤 불우이웃이나 복지재단 등에 기증한다.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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