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는 1984년 고교를 졸업한 뒤 고향(당진 합덕)에서 택시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두 눈을 잃었다. 후천성 시각장애인이 된 그는 한동안 방황하다 침을 배워 생업을 이어가다 다시 ‘인생의 눈’을 떴다. 99년 “두눈이 멀쩡할 때도 하지 못했던 대학공부를 다시 해보자”고 마음 먹은 것.
대학 공부는 그러나 만만치 않았다. 우선 점자 교재가 제대로 없었다. 교양 과목은 전무하다시피 했고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공부하는 사회복지학 전공과목도 50% 가량만 구비돼 있었다.
대학의 시설도 마찬가지였다. 장애인 특성화를 소리높이 외치면서도 정작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은 없었다.
“학업을 포기할까 생각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그 때마다 내게 학사모를 씌우겠다며 매일 함께 등교하는 아내가 떠올랐죠. 아빠 졸업 때까지는 엄마 뒷바라지도 포기하겠다던 아이들의 얼굴도….”
황씨는 점자 교재가 없는 과목의 경우 녹음기를 활용해 강의를 반복해 들었다. 전공과목 가운데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 점자 교재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교재는 후배들에게 넘겨 줄 계획이다.
학생들도 황씨의 노트 필기와 녹음 작업, 강의실 안내를 도왔다. 대학은 당시 5개 건물 가운데 한 개 건물에만 구비돼 있던 엘리베이터와 점자 블록 등을 모든 건물로 확대했다. 황씨의 입학을 계기로 장애인을 위한 대규모 ‘점자 음성 전자 교육정보센터’를 짓기 시작했다.
황씨는 “그림자처럼 도와준 아내와 학우들에게 감사한다”며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고 적극적인 장애인 복지 정책을 세우는 일을 하고싶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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