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 선산읍에서 ‘단계여성회’라는 조그만한 단체를 만들어 겨울이면 야생조수 보호에 나서는 주부들은 밀렵꾼과 정반대 마음을 가진 야생동물의 친구다.
“눈 쌓인 산에 보리며 볍씨며 옥수수를 뿌리면서 드는 생각은 ‘잘 먹어라’ 보다는 ‘밀렵꾼이나 덫에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죠. 겨울에는 야생동물들이 먹이 찾기가 어려워 산 아래로 내려오는 데 이런 배고픈 동물을 잡아 자기 몸 보신하겠다는 건 잔인한 짓 아닌가요.”
단계여성회 주부들은 96년 3월부터 야생조수 먹이주기와 하천청소, 황소개구리 잡기, 꽃길 가꾸기 등 고향의 자연을 지키는 아름다운 마음을 꼭 7년째 이어온다. 동물 먹이를 뿌리기 위해 읍 주변의 비봉산에 오르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 이들이 입는 빨간색 유니폼은 2만여명 선산읍 주민들의 상징처럼 됐다.
“자기 일을 가진 회원도 있고 농사와 가사에 매달리면서 이런 일을 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우리 고장을 아름답게 가꾸고 지키겠다는 주부들의 마음 덕분에 지금까지 회원 가운데 한명도 그만두지 않고 이어온 것이지요.” 꽃가게를 운영하는 김경자(金京子·49·선산읍 완전리) 회장의 말이다.
단계여성회 주부들을 묶어주는 또다른 고리는 선산 출신으로 조선시대 사육신(死六臣)의 한명인 단계 하위지(丹溪 河緯地) 선생. ‘단계’라는 이름도 여기서 따온 것. 야생조수 먹이를 뿌리고 쓰레기 하나를 줍더라도 단계 선생의 정신을 잇는다는 뜻을 담는다. 단계 선생이 자랑스럽다는 이선혜(李宣惠·44)씨는 “단계 선생의 호를 붙인만큼 선생이 보여준 큰 뜻을 고향에서 조금이라도 실천하는 게 도리가 아니겠느냐”며 “단계 여성회가 대를 이어 오래도록 우리 고장을 지키도록 우리부터 모범이 되겠다”고 말했다. 24일 선산 인근 해평면에서 월동하는 철새에게 모이를 뿌려주고 나면 이들은 또 다가오는 겨울까지 쉴새없이 고장 가꾸기에 나설 예정이다. 신영근(申永根) 선산읍장은 “단계주부들의 활동으로 유서깊은 선산에 생동감이 넘친다”며 “한결같은 모습으로 고향을 가꾸는 모습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구미=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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