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충청권에선]<下>행정수도 선정-보상 절차

  • 입력 2003년 2월 14일 18시 01분



“새 대통령의 공약인데…국민투표로 결정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공약이 안 지켜질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까?”

대전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임모씨(47)는 최근 일각에서 행정수도 이전 반대 의견을 제기하자 “자칫하면 충청권만 손해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등 온갖 규제를 해놓고 뒤늦게 이전 문제가 물거품이 될 경우 큰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

실제로 14일 이성구(李聲九) 서울시의회의장 명의로 ‘수도이전 반대 건의 겸 호소문’이라는 문건이 심대평(沈大平) 충남지사에게 전달되는 등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발은 적지 않다.

하지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가 수 차례 입장을 재확인하고 대략적인 일정까지 제시돼 갈수록 이전 움직임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선정과 보상은?=계획대로라면 내년 상반기까지 이전지가 선정될 전망. 인수위는 이를 위해 취임 직후 전담기구를 설치해 이전계획을 수립하고 현지조사를 벌인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후보지의 큰 틀은 ‘인구 50만명에 총 1500만평 규모’. ‘최소 비용으로 이전하겠다’고 노무현 당선자가 밝힌 만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충청권 11개 시·군 가운데 기반시설이 충분히 구축된 지역이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토지 보상은 토지보상법을 엄격히 적용해 땅값이 오르기 전 시가를 적용한다는 것이 건설교통부의 방침. 종전 신도시 개발 절차를 감안할 때 이번에도 일단 부지가 확정되면 주민 의견 청취→토지·지장물 조사 및 감정평가→보상협의·보상금 지급→이의신청이 이어질 예정.

한국토지공사 보상업무 담당자는 “기존 신도시 개발과 같은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이지만 특별법이 만들어질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3공화국의 수도이전 계획=70년대 후반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했던 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구성된 중화학기획단(단장 오원철·吳源哲 대통령 제2경제수석비서관)에는 수백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1차 보고서 8권(1978년) △최종 보고서 17권(1979년) 등 총 25권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조사활동을 벌였다.

기획단은 1차 보고서에서 충북 중원·진천·부강·옥천과 충남 천안·연기·공주(장기)·논산·금산 등을 제시한 뒤 2차 보고서에는 천원(천안·충북 청원), 논산, 대평(공주 장기 및 연기 대평)으로 대상지를 압축했다. 이는 현재 거론되는 지역과 거의 일치한다. 건설비용은 당시 금액으로 5조5421억원. 소비자물가지수를 감안하면 현재 화폐가치로 약 22조원에 해당한다.

3만㏊ 부지에 50만∼100만명 입주를 가상한 행정수도는 청와대와 중앙청(정부청사)이 가운데 위치하고 이를 바라보며 왼쪽에 사법부와 상업·주거지역, 오른쪽에 입법부와 상업·주거지구가 들어서는 대칭형 구조.

행정수도 이전 대상지는 안보적 측면, 서울과의 거리, 국토의 중심성, 지역의 중립성, 개발 잠재력 등 59개 항목의 평가를 받았다.

당시 기획단은 보고서에서 “행정수도의 도시 규모와 기능을 대전과 결합하는 방안이 개발효과와 비용면에서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붙이기도 했다.

▽외국의 사례=일본은 92년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99년 말 후쿠시마(福島)현 아부쿠마 등 4곳을 후보지로 압축했지만 아직까지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도쿄에서 철도로 1시간, 국제공항까지 40분 거리’ 등 9개의 이전 원칙을 정하는 데만도 3년이 걸렸다. 도쿄 시민들의 반발도 계속되고 있다.

동서독 통일 후 수도 이전논쟁이 벌어졌던 독일은 91년 연방의회 표 대결을 거쳐 베를린을 새 수도로 결정했다.

하지만 수도를 서둘러 옮길 경우 본의 부동산값 폭락과 사무실 공실률 증가 등의 문제가 불거질 것을 우려해 점진적으로 이전하기로 계획을 수정, 국방부 교육연구부 등 6개 부처를 본에 남기고 10개 부처만 베를린으로 옮겼다.

말레이시아는 95년 수도 콸라룸푸르의 교통과 상하수도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남쪽으로 25㎞ 떨어진 푸트라자야를 새 수도로 정하고 3년간의 공사를 마친 뒤 98년 총리관저를 이전한 데 이어 2005년 정부 부처를 옮길 예정이다. 이전 비용은 200억 링기트(한화 6조3000억원)가 소요됐다.

브라질은 55년 브라질리아 건설에 착수해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던 정부 부처를 60년부터 이전했다. 호주도 1909년 캔버라를 후보지로 선정해 시드니에 있던 총독, 총리 관저를 1927년부터 옮겼다.

대전=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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